[BOOK] 통증은 신이 내린 벌? … 아니다 축복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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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통증 연대기
멜러니 선스트럼 지음
노승영 옮김, 에이도스
442쪽, 2만원

통증에 관한 인류의 시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문학을 전공한 칼럼니스트의 눈으로 살핀 일종의 역사책이다. 만성통증을 앓고 있는 개인의 경험을 녹여낸 독특한 구성과 종교·문학·철학·신경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아우른다는 점에서 매혹적이다.

 유럽에서도 근대 이전엔 통증(pain)을 단순한 육체의 감각이 아니라 의미와 은유로 가득 찬 영적 영역을 반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귀신의 장난, 또는 신의 처벌로 이해됐다는 뜻이다.

 통증이 신의 손을 떠나 생물학적 현상으로 전락한 것은 19세기 중엽 마취법이 발견된 뒤의 일이다. 에테르와 아산화질소를 흡입하면 마취 효과가 생긴다는 사실은 1812년 영국에서 이미 알려졌지만 수술통증을 다스리는 마취제 활용은 미국 의사 윌리엄 T G 모턴의 노력으로 1846년에서야 의학계의 공인을 받았다. 이를테면 통증 정복의 첫 발을 내디딘 쾌거였다.

 그렇다면 현대적 통증관은 어떨까. 통증은 물리적 요인에 의한 신체의 반응일까. 그렇지는 않다. 현재 통증에 대해 가장 권위 있는 정의는 국제통증학회가 1979년 제시한 “실제적, 또는 잠재적 조직 손상에서 연상되거나 이러한 손상으로 묘사되는 불쾌한 감각적·정서적 경험”이란 것이다. 뇌 사진 촬영 등 신경과학과 병리학의 성과로 통증의 주관적·정서적 의미와 기계적·물리적 의미를 통합한 것이다. 이는 가짜 약으로도 통증이 완화되는 플라시보 효과나 잘린 팔다리에서도 통증을 느끼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통증은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짊어진 숙제이자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상처를 입거나 병을 앓으면 심한 통증을 느끼고 이는 상처 부위를 보호하거나 치료를 받도록 경고하는 구실을 한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무척추동물은 수많은 후손을 남기거나 신체 재생능력을 가졌기에 생존이 가능했지만 인간이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러시아 태생의 미국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주인공이 “인류 역사는 통증의 역사”라고 선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비록 ‘연대기’라고 하기에는 성글지만 통증의 역사를 문화사적으로 또 의학적으로 살핀 이 책을 읽는 것은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해 보인다.

김성희(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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