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창·박병춘이 가봤다, 제주의 겨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구본창이 올 초 제주도 대평마을 어귀에서 찍은 사진 ‘Snow 2011-14’(110×276㎝).

꼭 제주도일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제주였기에, 제주의 겨울이었기에 가능한 것이 있다. 사진가 구본창(58)의 신작전 ‘제주풍경’이 그렇고, 한국화가 박병춘(45)의 개인전 ‘섬’이 또한 그렇다.

 구본창은 올 초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대평마을 어귀에서 평소 그리던 장면을 만났다. “늘 수묵화 같은 풍경을 주제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뭔가 붓으로, 먹으로 막 휘두른 그런 사진을 찍을 수 없을까 고민했었어요.” 딱 알맞게 쌓인 흰 눈에 검은 화산암이 군데군데 드러났다. 눈은 분명 총천연색으로 보고 있지만, 그 장면은 흑백 수묵화였다. 그래서 찍었다.

 구본창은 자화상·인체·자연 등을 소재로 인간의 실존,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어온 사진가다. 2000년을 전후해선 콘크리트 벽의 흔적을 담은 ‘시간의 그림’, 흰 벽에 말라붙은 나뭇가지를 찍은 ‘화이트’, 눈 위에 떨어진 솔잎이 종이 드로잉의 느낌을 내는 ‘자연의 연필’, 그리고 ‘눈(snow)’ 시리즈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이번엔 좀 더 갔다. “겸재(謙齋) 정선의 힘있는 붓처럼, 이전까지의 평면적이고 정적인 사진에서 벗어나 흑과 백이 움직이듯 역동성이 느껴지도록 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박병춘이 올해 제주 속 작은섬 비양도를 수묵으로 그린 ‘섬’(69×99㎝).

 “예술가는 바다에 떠 있는 섬과 같이 세상에 떠 있는 섬이다.” 박병춘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독창적 준법(<76B4>法·동양화에서 산·암석의 굴곡 주름을 그리는 화법)으로 산수화를 그리는 한국화가다. 서해와 남해, 통영과 신안, 제주도와 진도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뿐이 아니다. 강원도의 계곡, 히말라야의 길 위에서도 그는 섬을 만난다. 2007년 제주에서 한 달간 겨울을 보낸 게 계기. “홀로 자신을 지탱해 가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섬”이란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꼬불꼬불 라면준(?)으로 몽글몽글하게 그린 제주의 오름 외에도 제주 화산암을 전시장에 가져다 놓은 오브제, 온통 새까만 먹으로만 그렸는데 오히려 입체적으로 보이는 세모난 섬 그림도 나왔다.

권근영 기자

◆전시정보=▶구본창의 ‘제주풍경’. 서울 소격동 트렁크갤러리에서 24일까지. 관람료 무료. 02-3210-1233.▶박병춘의 ‘섬’. 경기도 파주 헤이리 갤러리 이레에서 12월 1일까지. 관람료 무료. 031-941-411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