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물가지수 셈법 ‘트리플 꼼수’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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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직장인 이민령(28)씨는 최근 남자친구와 백금으로 커플 반지를 맞추며 오른 금값에 깜짝 놀랐다. 간단한 디자인의 반지 두 개가 50만원이 훌쩍 넘었다. 이씨는 “금값이 올랐다 올랐다 해도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며 “앞으로는 액세서리 하나도 쉽게는 못 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금으로 만든 액세서리 값이 아무리 많이 올라도 서민 물가에 반영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소비자물가지수 산출방식 개편안 때문이다. 개편안에선 금반지가 조사 대상에서 빠진다. 변화는 또 있다. 일부 농수산물은 조사 대상 규격이 작아진다. 또 물가 계산에 도시 가구 외에 군(郡) 단위 지역의 소비패턴도 감안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이런 변화에 ‘목적’이 있다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정부가 비싼 물건을 지수 산정에서 빼 버림으로써 ‘장부상 물가 낮추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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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논란은 정부가 물가지수 개편안을 11월 소비자물가지수부터 반영한다고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애초 계획에 따르면 새 물가지수 산출방식은 12월 지수부터 반영되도록 돼 있었다. 정부는 “이왕 개편하는 거 한 달 앞당긴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일각에선 의심의 눈초리가 끊이지 않았다. 올 11월 물가상승률이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앞당긴 것 아니냐는 것이다.

고려대 최종후 정보통계학과 교수는 “어차피 지수 산출방식이 곧 바뀔 것이어서 ‘꼼수’라고 부를 것까진 없겠지만 논란의 여지가 있다”며 “애초 일정을 바꾸는 바람에 의혹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품목을 넣고 빼는 과정에선 ‘금반지’가 특히 논란거리다. 이번 조사에선 공중전화 이용료나 캠코더 같은 품목이 빠지고 스크린 골프·네일아트·떡볶이 같은 품목이 새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금반지를 조사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2009년부터는 국제기준에 따라 14K 금을 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하지만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금반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3.7%나 되는 데다 지난 한 해 동안 금반지 값이 30% 가까이 올라 물가 부담이 커지자 이를 제외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LG경제연구소 강중구 연구원은 “2005년 이후 소비 지출에서 귀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지 않았다. 귀중품의 대부분이 금제품인데 이를 ‘자산’으로 보고 물가 조사 품목에서 빼는 게 맞는지는 의문스럽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여기에 통계청이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가중치를 내면서 도시 가구의 소비 지출액뿐 아니라 군(郡) 단위 지역의 소비 지출패턴도 반영하기로 해 또 다른 논란이 일고 있다. 도시 지역에 비해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고가품과 주거비용·교육비 등의 비중이 낮은 군 단위 지역의 소비패턴이 반영된다면 물가지수에 적잖은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계 관련 전문가는 “최근 주거비용이나 교육비의 상승 폭을 감안하면 이 항목의 가중치가 낮아졌을 때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기획재정부 이용재 물가정책과장은 “군 단위 지역은 식료품이 전체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은데, 농식품 값의 등락폭을 감안하면 오히려 물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물가지수의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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