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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EU처럼 단일 블록국가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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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한·중·일 3국은 지난 100년간 서구의 뒤만 보고 달려왔다. 이제 3국이 아시아의 전통문화와 사상을 서구식 정보기술(IT)·생명공학(BT)과 잘 결합하면 새로운 문명의 발신자가 충분히 될 수 있다.”

 이어령(사진) 전 문화부 장관(현 중앙일보 고문)은 16일 중국 베이징의 한국문화원(원장 김익겸)에서 한·중 양국 대학생들을 상대로 특강했다. 주제는 ‘문명의 축이 아시아로 이동하는가’였다. 이 전 장관은 ‘가위바위보로 푸는 한·중·일’이라는 강연의 부제목이 말해주듯 동북아를 대표하는 3국이 같으면서 다른 문화를 기반으로 21세기에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전 장관은 서양의 동전던지기와 동양의 가위바위보를 예로 들어 동서양의 문화 차이를 비교했다. 그에 따르면 서양은 이기거나 지는 결과만 나오지만, 동양은 1등 없이 돌고돌아 순환·생성·감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몽고의 침략과 임진왜란을 보면 한반도가 제역할을 할 때 대륙과 해양이 서로 함부로 하지 못했던 것처럼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가위(중간자)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3개의 계란으로 계란부침을 만드는 과정을 예로 들면서 한·중·일 3국의 바람직한 공생 모습을 비유한 대목에서 청중들의 큰 공감을 얻었다. 3개의 흰자위가 하나로 뭉쳐져 바다처럼 서로 연결된 밑그림 위에 3개의 노란 섬처럼 본래 모습을 유지하면서 3국이 공존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이 전 장관은 “21세기에는 아무리 큰 나라라도 공존하지 않으면서 혼자 살 수는 없다”고 강조하고 “기독교문화라는 공통 분모를 갖춘 유럽연합(EU)처럼 한·중·일 3국은 언어는 달라도 공동의 문화가 있기 때문에 미국·EU처럼 하나의 블록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IT·BT도 에너지테크놀로지(ET)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며 “한·중·일이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를 통해 ‘전력 ET망’을 만들면 서로의 필요성 때문에라도 전쟁 없이 공존과 평화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전날 이 전 장관은 베이징대에서 열린 문화 포럼에 참석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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