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벤처, 물없이 사막 건너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금 한국의 벤처들은 신규자금이 고갈된 사막을 건너고 있다. 누군가 오아시스를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가지고 있는 물을 나누어 주라.

계속되는 벤처 대란설

최근 한국을 어둡게 뒤덮고 있는 자금 경색의 먹구름이 엉뚱하게 벤처기업의 목을 짓누르고 있다. 또 코스닥 시장이 침체되면서 벤처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려 전전긍긍하고 있다. 마치 3년 전의 IMF 위기 이전 같은 ‘8월 대란설’ ‘10월 대란설’이 유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벤처기업들의 주가가 하락하고 벤처인력들의 이탈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벤처산업 활성화 하자’(96년 4월), ‘벤처기업 육성의 필요성’(97년 5월), ‘벤처발굴 발벗고 나섰다’(97년 12월), ‘한국형 벤처 양성’(98년 5월), ‘벤처자금 눈먼 돈인가’(99년 7월), ‘인터넷 창업 열풍’(2000년 2월), ‘국민 혈세 받아 재테크’(2000년 4월), ‘외국계 자금 벤처투자 러시’(2000년 6월), ‘자금경색 벤처업계 강타’(현재).

위의 내용은 지난 5년간 신문지상의 머릿기사들이다. 한국에서의 벤처 위치가 계속 수직상승하고 있다가 현재 주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국에 있어서 벤처 생태계는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특히 인터넷 벤처는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한국에서 벤처기업은 무엇이며 벤처기업은 어디에 와 있는가, 그리고 벤처에 필요한 자금은 어떻게 공급해야 하는가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

우선 코스닥 시장은 장외시장이다. 그리고 벤처기업은 글자 그대로 모험기업이다. 또한 투자가는 모험자본가이다. 벤처기업인은 무(無)의 상태에서 시작했으므로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된다. 벤처기업은 주로 첨단기술이나 노하우 등을 개발, 이를 기반으로 도약하는 모험기업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력들이 테헤란 밸리에서 빠져 나오고 있지만 인력의 수요는 여전하다고 한다. 마치 골드러시 시대의 캘리포니아와 같다.

그러면 벤처의 발상지인 미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벤처의 요람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이고 역사적으로는 1848년 캘리포니아의 골드러시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동부에서 서부로 앞다퉈 가는 포장마차에서 연유한 ‘밴드 웨건 효과’에 따라 캘리포니아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철도가 부설되고 호텔과 광업장비회사가 흥청댔다. 미국의 벤처기업이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포장마차의 행렬에도 일종의 룰이 있었다. 리더에 의해 포장마차의 규모가 결정되었고 인디언 원주민에 대한 동태, 식량, 식수 등에 대한 정보가 자연적으로 교환되었으며 연방정부는 직접 간섭은 않고 기본적인 룰만 정해 주었다.

미국의 벤처정신은 서부개척과 함께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서부개척 시대가 온 것은 미국인들이 1830년대에 미시시피강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다음부터였다. 미시시피강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는 행렬에서 제일 앞장을 선 사람들은 사냥꾼과 모피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총과 덫을 가지고 서부로 나아가 나중에 올 사람들을 위해 길을 개척해 놓았다. 그 뒤를 이어 상인, 농민, 투기꾼, 선교사들이 몰려들었다. 이들 포장마차 행렬은 가는 도중에 뱀, 무더위, 폭풍우, 인디언의 습격을 만나게 되지만 직업군인들의 보호를 받았다.

이런 벤처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벤처기업들은 나스닥이라는 시장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자금을 공급받았다. 나스닥 붐으로 자연스레 벤처로 자금이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스닥이 과열 조짐을 보이자 미국정부는 금리조정을 통해 나스닥의 급등에 간접적으로 속도 조절을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어느 정도 소프트 랜딩도 시험시키고 있다. 한국의 코스닥도 나스닥과 연동된 덕분에(?)어느 정도 속도 조절은 하고 있다. 미국의 포장마차들은 아리조나사막을 건널 때 큰 희생을 치렀다. 그렇지만 쉬면서 충분한 식수를 확보한 뒤에야 사막을 건너 비옥한 캘리포니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의 벤처들은 신규 자금이 고갈된 사막을 건너고 있다. 누군가 오아시스를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거나 가지고 있는 물(자금)을 나누어 주라. 아직 사막을 건너지 않은 벤처는 쉬면서 충분한 물(자금)을 확보해야 한다. 사막을 건널 자신이나 역량이 없는 벤처는 사막을 건너지 않고 다른 지역에 정착해야 한다. 어차피 모든 포장마차들이 사막을 건너 캘리포니아에 도착했던 것은 아니니까.

글 : 김신(경희대 국제경영학부 교수·한국인터넷비즈니스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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