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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CEO] 언어공학연구소 장충엽사장

중앙일보

입력

눈썹까지 덮은 큰 안경에 작은 눈으로 빙그레 웃는 모습은 영낙없이 마음좋은 옆집 아저씨였다. 언어공학연구소의 장충엽 사장(42). 흔히들 `구가다''라고 하는 그런 분위기를 지녔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노타이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서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어째 어색해 보였다.

성실하게 회사 생활을 했지만 결국 컴퓨터 세대에 밀려 뒤늦게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는 중년 샐러리맨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그런 외모에 걸맞지 않게 그는 요즘 잘나가는 벤처기업의 CEO다.

그가 운영하는 언어공학연구소는 번역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언어공학연구소는 `인공지능 다국어 검색엔진''을 개발, 인터넷 소프트웨어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검색엔진은 한↔영, 중↔한, 영↔중, 일↔영 등 4개국어로 쌍방향 인터넷 검색이 가능하고 한번 클릭으로 원문을 통째로 다른 언어로 번역해주는 획기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외국어 장벽때문에 고민하는 네티즌들에게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술이다.

이 회사는 이 검색엔진을 장착한 `월드맨닷컴''(http://www.worldman.com) 사이트를 개설, 인기를 끌고 있으며 최근 중국 업체에 연간 30만달러(한화 3억6천만원)의 사용료를 받고 수출, 토종 검색엔진의 첫 해외 수출이라는 계가를 올렸다.

중국에는 3-4개 정도 현지에서 개발된 검색사이트가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 검색시장이 초기 단계여서 언어공학연구소 제품이 돌풍을 일으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사는 일본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도 다국어 검색기술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지 업체들이 언어공학연구소와 손잡기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한다.

장사장의 꿈은 그러나 아시아시장에 있지 않다."세계 검색시장을 장악하는게 목표입니다. 현재 야후나 라이코스 등에 검색엔진을 제공하는 유명한 미국회사가 있는데 그 자리를 빼앗는 거지요. 아니면 영어 검색포털사이트를 직접 만들어 야후와 라이코스에게 도전할 겁니다."

그는 "만리장성이 1천500년이나 걸려 완성됐다"며 다국어 검색엔진 개발도 그정도는 아니지만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가 언어 분야 소프트웨어 개발에 투신한 것은 이미 8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국대 전산학과 78학번인 그는 대기업 전산실에서 일하다가 지난 92년 ㈜정소프트라는 회사를 설립, 토플과 토익을 CD롬으로 개발한 `TOEIC 2000''과 `TOEFL 2000''을 내놓았다.

당시 이 제품은 약 20억원 어치인 20만장이나 팔리는 등 인기를 누렸었다. 그러나 동업자에게 회사의 살림을 맡겼다가 자금을 잘못 관리해 부도가 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는 95년 8월 번역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를 차리고 이 분야에 본격적으로 매달렸다. 96년 6월에는 서울대 언어학과 대학원생들이 운영하던 `서울대언어공학연구소''를 흡수해 지금의 회사명으로 이름을 바꿨다.

장사장이 다국어 검색엔진을 개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미래를 내다보는 그의 혜안과 끈기였다. 그는 지난 93년 중국에서 컴퓨터 유통회사를 운영하며 번 돈을 현지의 싼 인력을 고용, 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4개 국어 단어를 쌍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DB화 작업에 쏟아부었다.

DB작업은 3년이 걸렸으며 DB를 한국으로 가져와 대학원생을 고용해 수정하는데 또다시 2년이 걸렸고 수십억원이 들어갔다. 그는 당시에 일본 도쿄의 서점가를 뒤져가며 각종 전문용어 사전까지 싹쓸이해 닥치는대로 PC에 입력했다.

그동안 벌었던 돈은 거의 다 까먹었고 IMF때는 회사가 존폐 위기까지 맞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인터넷 붐이 일면서 그가 축적해놓은 DB가 빚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언어 분야 소프트웨어 기술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활용분야가 넓어졌다. 언어공학연구소는 최근 휴대폰으로 채팅이나 e-메일을 쉽게 할 수 있는 단축입력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그는 오늘의 자신이 있을 수 있는 비결을 이렇게 말한다. "오직 한 우물을 판 것이지요. 여기 저기서 유혹이 많았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이 미련한 일을 하겠느냐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우리나라 언어정보 수준을 한단계 높여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는 전형적으로 자수성가한 케이스다."대학시절 등록금을 벌려고 빵장사에 책외판원, 술집웨이터까지 안해본 게 없어요. 한달내내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촌놈이 크게 성공한 것이지요."

옛시절을 말하며 쑥쓰러워하는 그의 얼굴에는 어린이 같은 순진함과 함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뚝심이 배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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