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김 부장님, 부인 국민연금부터 가입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100세까지 살아야 한다는데, 밥값 걱정에 친구도 자주 못 만나게 되는 것 아닌가?’ 은퇴가 멀지 않은 베이비붐 세대는 걱정이 앞선다. 당장 집 대출금 갚고, 부모님 생활비 보내고, 자녀 등록금 대기도 벅차다. 금융회사들의 겁주기 마케팅 때문에 공포는 더 커진다. 그러나 막연히 두려워할 일만은 아니다. 꼼꼼히 따져 보면 길이 보인다. 출발은 은퇴 후 내 생활의 눈높이를 정해 놓는 일이다. 노년에 필요한 돈과 실제 들어올 현금수입, 이제껏 축적한 자산을 비교해 현실적인 솔루션을 찾아나가야 한다.

◆47세 대기업 부장=47세 김남일(가명)씨는 대기업 부장이다. 55세 정년퇴직을 예상한다. 국민연금 홈페이지에서 ‘내 연금 알아보기’를 해 본다. 가입기간 25년에 63세부터 매월 112만의 연금을 받게 된다. 김씨는 퇴직연금을 확정급여형(DB)에 가입했다. 최종 급여에 근속연수 25년을 곱해 총액 1억700만원, 월 환산 50만원이다(연금 개시 이율 4.6%, 종신수령 기준). 개인연금도 들어놨다. 서른 살부터 20년간 연 300만원씩 불입했고 올해부터 400만원으로 높였다. 김씨는 개인연금으로 55세부터 월 78만원을 받게 된다(이율 4.6%, 종신 수령). 이를 모두 더하니 55~62세엔 월 128만원, 63세 이후는 월 240만원이 다달이 들어올 예정이다.

 김씨는 1년에 한 번은 해외여행을 다니는 정도의 ‘중급’ 생활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은퇴 후 월 300만원의 현금수입이 목표다. 현재 예금, 주식형 펀드 등 금융자산 1억원과 시가 8억원의 아파트가 있다. 이 자산으로 둘째 대학 마치는 데 6000만원(연간 1500만원), 두 자녀 결혼자금 1억원을 해결하고 노후 생활의 부족액도 채워야 한다.

 전문가들에게 솔루션을 의뢰했다. 은퇴시점까지 더 모아 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 우선 부인 명의로 국민연금에 최대 불입액으로 임의 가입하고, 다른 연금상품 적립도 늘려야 한다. 거주 주택을 줄여 은퇴자산으로 쓸 생각도 하는 게 좋다. 보험사의 순수 종신 연금보험에 가입할 경우 1억원당 연금을 월 44만원을 받는다고 한다. 김씨가 연금보험으로 노후 생활의 부족액을 채우려 한다면 1억5000만원가량 가입하면 된다. 이게 부담이라면 제2의 취업 등을 통해 은퇴 연령을 60세로 늦추거나 은퇴 후 월 생활비 눈높이를 250만원 수준으로 낮추면 된다.

◆39세 중소기업 과장=39세 나명훈씨는 가능하다면 지금 직장에서 정년(55세)을 맞을 생각이다. 청춘을 바친 곳이라 애착이 크고 규모는 작지만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월급 250만원을 받는다. 평균 임금상승률 4.8%를 적용, 퇴직시점 월급은 490만원으로 예상된다. 55세에 일을 그만둔다면 퇴직금 총액은 1억24000만원, 퇴직연금으로 다달이 58만원을 받게 된다.

개인연금은 붓지 않고 있다. 아이들 사교육비에 부모님 용돈까지 신경 쓰다 보니 이렇다 할 금융자산도 없다. 지금대로라면 그의 55~64세 사이 현금 흐름은 달랑 퇴직연금 월 58만원이다. 국민연금을 타는 65세 이후가 돼야 월 수입이 200만원 선으로 올라간다. 은퇴가 먼 훗날의 얘기로 생각돼 구체적인 목표액은 없지만, 그래도 노후에 월 200만원은 부족할 것 같다.

 나씨는 아직 노후를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 스스로 연금부터 쌓기 시작해야 한다. 개인연금 상품에 가입해 연 소득공제 한도인 400만원까지 불입하는 게 1순위다. 10년 후 50세쯤엔 부인 명의의 국민연금 임의 가입도 필요하다. 근로소득자인 나씨의 소득이 크게 늘어나진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허리띠를 좀 졸라매야겠다. 지금 나씨는 두 자녀의 사교육비로 매달 100여 만원을 쓴다. 그의 월 급여와 자산(시가 4억원 상당의 주택, 집 담보 대출 1억원) 수준에 비춰 과한 것은 아닌지 따져 봐야 한다. 생활의 씀씀이를 줄여 생기는 돈은 적립식 펀드 등으로 다소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필요가 있다. 또 자격증을 따놓는 등 현 직장을 떠난 뒤에도 계속 일할 능력을 갖춰야겠다.

◆56세 은퇴 자산가=이미 은퇴한 강화진(56)씨는 생활비로 월 600만원을 쓴다. 금융자산이 30억원이며 이 중 주식형 비중이 절반이다. 이 밖에 현금 1억원, 시가 15억원의 주택, 20억원 상당의 임대용 상가를 갖고 있다. 누가 봐도 자산가다.

 그러나 강씨는 요즘 부쩍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은퇴 전까지 일에 파묻혀 살다 보니 이렇다 할 취미가 없고 같이 여가를 즐길 친구도 거의 없다. 아내가 통장을 쥐고 있다 보니 용돈 타 쓰기도 눈치가 보인다. 아내는 자식들에게 돈 쓸 생각만 할 뿐 남편 용돈엔 인색하다. 한편 강씨의 상가는 요즘 공실률이 20%나 된다. 얼마 전에는 임차인 중 한 명이 골치를 썩였다.

 기대수명을 강씨 85세, 배우자 90세로 가정할 때 강씨 부부는 이미 필요 이상의 자산을 갖고 있다. 상가에서는 월 500만원가량의 임대수입이 나오고 60세 이후에는 월 100만원의 국민연금도 받는다. 자녀들 유학에 결혼자금까지 넉넉히 잡아도 전혀 문제없는 걸로 계산됐다. 자식들 주택에 사업자금까지 대줄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전문가들은 강씨 부부에게 월 생활비를 1000만원 수준으로 높여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풍요로운 여생을 보내라고 조언한다. 상가 처분도 고려해 보라고 했다. 또 높은 자산운용 수익이 필요치 않은데 15억원이나 주식형 자산에 넣어 둘 필요도 없다. 채권 등 보수적인 자산으로 옮기는 게 낫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부부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자기 자신과 가족에게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잊었던 친구들도 찾아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 보자. 돈이 좀 있으니 밥값도 내고. 기부와 봉사 등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찾는다면 노후 생활의 즐거움이 한결 높아질 수 있다.

김수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