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의 마켓뷰] 시장을 멀리 내다볼수록 두려움 줄어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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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증시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다. 물론 상황이 좋지 않다. 우리도 이를 알고 있다. 유로존 재정위기 해소까지는 난항이 불가피하다. 은행 시스템의 복원 과정에서 부채 축소 압력을 피하기 힘들고, 이후 글로벌 경기는 좋게 봐야 느린 회복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빌려준 돈을 떼일 수 있다’는 불신이 가져온 신용경색의 공포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찬바람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빙하기는 아니다. 지난 8월의 매서운 한파가 투자자의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지만 계절은 시간과 함께 바뀔 것이다.

 숲(변수)이 우거져 길(방향)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일단 높이 올라가 산 중턱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지금이 그렇다. 일단 더 멀리 보고 큰 그림을 그려보자. 거시 환경과 기업 이익 동향은 긍정적이지 않다. 글로벌 경기는 하락(OECD 선행지수) 추세다. 국내 기업의 이익증가율 역시 지난해 53.7%에서 올해 26%(추정치), 내년 14%(추정치)로 감소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경기지표 하강이 확인되는 내년 상반기에 가면 내년 이익증가율에 대한 기대수준은 한 자릿수로 추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코스피지수는 올라설 수 있다. 이익의 성장이 아닌 수준을 반영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의 상승 가능성 때문이다. 향후 이익 감소가 뒤따르더라도 금융위기 이후 한 단계 수준이 올라선 이익 규모를 감안할 때 코스피의 추가 하락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수급의 구조적 개선에 힘입은 PER 상승세도 기대할 수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실질금리 마이너스 구간에서 벗어날 때 코스피는 저평가에서 벗어나 적정가치를 받는 시장으로 이동해 갔다. 채권 및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이동하는 자산배분 사이클은 PER을 높여준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주식의 비중 확대를 권고하지만 성급히 늘릴 필요는 없다. 연말과 연초의 조정이 진행되고 난 뒤의 큰 그림을 매력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위험의 해결 과정과 경기하강이 맞물리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좋게 봐야 박스권 장세다. 하지만 내년 하반기는 코스피가 적정 PER을 찾아가는 강세장을 전망한다. 이번 주 이후 코스피지수가 2000선에 다가서는 상승 랠리가 펼쳐진다면 쫓아가기보다 위험을 관리할 것을 권고한다. 유로존 재정위기의 단기 봉합 전까지는 그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하고, 오히려 합의 이후에 주가가 정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 해결 이후를 경계하는 이유는 또 하나의 불확실성, 바로 합의된 사항의 실행 과정에서 노출될 변화 때문이다. 무엇보다 50% 부채탕감(헤어컷)에 합의했지만 각 은행의 부채탕감 비율 합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따른 은행권 부실의 현실화가 우려 요인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길게 보면 파국보다 해결 수순을 밟겠지만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잡음은 주가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윤지호 한화증권 투자전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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