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특명 받은 ‘품질 암행어사’ 불량 땐 ‘레드 마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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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강실 품질보증계장이 LG전자 창원 2사업장 세탁기 생산 라인에서 수출용 드럼세탁기를 검사하고 있다. 이곳에선 하루 2만 대의 세탁기를 생산한다.

11일 오전 11시 LG전자 경남 창원 2사업장. 8개 생산라인에서 일평균 세탁기 2만 대를 생산하는 이곳에 이강실(50) 세탁기사업부 품질보증계장이 ‘떴다’. 매일 보는 사람인데도 그가 지나갈 때마다 생산 직원들이 이 계장을 흘끔거리는 게 이상했다. 한 직원에게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

 “이 계장님은 품질 ‘암행어사’나 다름없어요. 소리 없이 다가와 경고장을 날릴 땐 정말 무섭습니다.”

 이 계장은 올 초 구본준(60) LG전자 부회장 지시로 신설 임명된 ‘품질 보안관’이다. 이영하(57) 사장 명의로 된 붉은색 경고장을 들고 다니며 작업장에 문제가 없는지 하루 종일 순시하는 게 일이다. 같이 동행하는 직원 한 명은 즉석에서 문제 현장을 촬영한다. 이 계장은 “경고장을 받으면 임원 회의에 불려가 원인 분석, 조치 내용, 재발 방지 대책을 보고해야 한다. 내용이 부족하면 문책당한다. 사장이 직접 경고장을 주는 셈이라 내가 뜨면 직원들이 벌벌 떤다”고 말했다.

 LG전자가 ‘품질 경영’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구본준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면서 강조한 내용이다. 윤원호(47) 품질경영팀 부장은 “구 부회장은 예전 CEO와 달리 해외 사업장에서 발생한 단 한 건의 부품 불량도 직접 보고받는다”며 “덕분에 ‘품질은 돈이다’란 개념이 직원들 사이에 단단하게 뿌리내렸다”고 말했다. 품질을 강조하는 구 부회장의 일화는 유명하다. 올 1월 멕시코 법인을 방문했을 때 액자에 걸려 있던 구인회 창업주의 어록 ‘보래이, 백 개 가운데 한 개만 불량품 섞여 있다면 다른 아흔아홉 개도 모두 불량품이나 마찬가진기라’를 보고 감명받은 구 부회장은 전 세계 법인에 이 어록을 번역해 걸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올 8월에는 창원 사업장에 들러 40분 동안 임직원들에게 ‘품질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LG의 자존심을 되찾자’는 내용의 강연을 하고 돌아갔다. 창원 2사업장 곳곳에도 그의 품질 경영 기조가 숨쉬고 있었다. 품질 보안관은 그 상징이다. 생산·출하 중단 권한을 가진 보안관은 매일 두 차례 생산 현장을 순찰한다. 실제로 올 초 생산을 중단한 적도 있었다. 공장 곳곳에는 ‘품질은 판매다’ ‘현재 방식이 최악이다. 개선은 무한하다’를 비롯해 품질 개선을 강조하는 문구가 걸려 있었다.

 직원들도 회사의 이런 노력에 대해 긍정적이다. 노동조합에선 올 1월 불량 제품을 쌓아 놓고 크레인으로 부수는 ‘품질 박멸회’를 열어 경영진의 의지에 화답했다. 윤원호 부장은 “예전보다 힘들긴 하지만 가전업체의 경쟁력이 품질이라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2사업장은 연간 세탁기 600만 대를 생산하는 국내 최대 규모 세탁기 공장이다. LG전자는 이곳과 해외 거점에서 생산한 세탁기를 바탕으로 시장점유율 10%를 넘기며 수년째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엔 280억원을 들여 이곳에 지상 7층, 지하 1층 규모 ‘세탁기 연구개발(R&D) 센터’도 지었다. 김재환(30) 세탁기사업부 연구원은 “세탁기·냉장고·에어컨 같은 백색가전은 누가 뭐래도 글로벌 톱 수준”이라며 “‘가전만큼은 우리가 최고’란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말했다.

창원=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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