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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정문이 모든 것을 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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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석한
변호사
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

투자자·국가 분쟁해결(ISD) 제도가 한국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의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ISD에 강력히 반발하며, 이를 걷어내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 자체를 막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반대 이유는 오도(誤導)된 것이며, 여기에는 오해가 깔려 있다.

 ISD 비판론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두 갈래다. 하나는 한국에 불리한 국내법 개정을 초래해 국가의 사법주권과 정부의 자율성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ISD 조항을 보면 그렇지 않다. FTA 11조 26항에 따르면 모든 ISD 중재판정 결정은 농민·중소기업 등 모든 당사자가 자국의 국내법에 따라 갖고 있는 권리를 저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즉 ISD 중재판정은 금전상의 손실과 재산의 복구에만 국한돼 한국의 국내법이 농부와 기업인들에게 부여한 법적 권리와 혜택은 침해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반대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중재판정에는 해당국의 국내법을 개정할 권한도 없다.

 두 번째는 ISD 조항이 미국식 모델인 ‘양자 투자협정’에 토대를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법체계와 본질적으로 상충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도 사실이 아니다. FTA의 구조는 한국의 사법체계가 오랫동안 수용해온 국제법 원칙에 기본적인 토대를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협정문 11조5항의 외국인 투자에 따른 ‘최소대우 기준’을 보자. 이는 외국인 투자에 대해 해당국 정부들이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제공할 의무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유사환경’에서도 ‘최혜국 대우’와 ‘내국인 대우’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 세 원칙은 국제통상법에서 이미 확실하게 자리잡은 기준들이다. ISD 규정들은 기본적으로 한국에 현존하는 국제적 의무들을 다시 한번 기술한 것일 뿐이며, 한국의 사법적 체계와도 충돌하지 않는다. 특히 ISD 규정들은 한·칠레 FTA(2003), 한·페루 FTA(2010) 협정문에 담긴 내용과 거의 흡사하다.

 ISD 규정은 한국에 투자하는 미국 투자자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미국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들도 보호한다는 점을 한국은 유념해야 한다. 지난해 한국이 미국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150억 달러가 넘는다. 앞으로 한국의 대미 직접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바로 이 ISD 규정이 해외에서 한국인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다 ISD 협정의 보호장치들은 앞으로 한국이 절실히 원할 ‘더 많은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자극제가 될 것이며, 한때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이기를 꺼린다는 한국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미 FTA처럼 중요한 협정이 중대한 논쟁을 야기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협정으로 인해 영향 받을 모든 집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 시스템의 힘을 상징하는 증거다. 하지만 ISD에 관한 현재의 논쟁은 매우 걱정스러운 측면이 있다. 특히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쟁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당시 논쟁 때에도 완전히 날조된 것은 아니라 해도 근거 없는 수많은 주장이 언론과 야당에 의해 분별없이 제기됐지 않은가. 잘못 알려지고 노골적으로 뒤틀린 이 논쟁은 새로 등장한 이명박 정부를 절름발이로 만들었고, 나라의 에너지를 낭비했으며, 한·미 관계를 해쳤고, 지구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훼손했다.

 이번에 한국은 똑같은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 만약 사실과 법률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한·미 FTA를 거부하면 졸렬한 결과가 될 것이다. 이 역사적인 협정이 한국 국민에게 가져다 줄 혜택은 너무도 엄청나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우리는 반드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

김석한 변호사·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