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 아빠의 딸 아이 키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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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가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현실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는 책, 그 문제를 극복할 대안을 제시하는 책,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감동을 남기는 책, 누구나 생각은 하고 있지만 정리하지 못한 지혜를 명료하게 정리한 책…….

기준은 많을 겁니다.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떨까요? 가까이 지내는 한 친구가 출판사 이름을 정하려 애면글면하면서 그런 생각에서 출판사 이름을 '두고두고'라고 하면 어떨 지라고 이야기했던 일이 있습니다. 두고 두고 읽을 책을 만들겠다는 생각이었지요. 뜻으로야 반대할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러나 그 친구는 나중에 다른 이름으로 출판사 이름을 정했어요. 뜻이 좋다고 이름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시간이 지나도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면 그건 분명히 좋은 책일 겁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다시 꺼내 든 책이 〈셀레스트〉(명경)입니다. 부제까지 합치면 〈셀레스트, 나의 딸,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입니다.

여기서 셀레스트는 이혼한 부모 사이를 오가며 자라는 딸 아이의 이름입니다. 책의 제목만으로는 독자들에게 그리 어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이혼한 뒤 홀아비로 살면서 공동친권을 행사하는 셀레스트의 아빠, 월터 씨가 딸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집입니다.

월터 씨 부부는 셀레스트를 임신하면서부터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스러운 딸 셀레스트가 두 살도 되기 전인 '머리 숱이 보기 좋을 정도가 되기도 전에' 헤어집니다. 그리고 미국의 저널리스트이며 시인인 월터 씨는 홀아비로 살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매우 훌륭한 아빠'임을 무척 즐겁게 느끼며 뉴욕에서 살았습니다.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는 보수적 교육을 받아온 월터 씨는 이혼하면서 공동친권 행사자로 '육아자와 교육자'의 역할을 동시에 맡아야 했지요. 학교 바자회에 내놓을 음식을 만들고, 딸 아이가 아플 때는 소아과 대기실에 앉아 회사 일을 제끼기도 하지요. 그런 가운데 월터 씨가 깨닫는 것은 뜻밖에도 자기 안에 숨겨진 유연성이었습니다.

그 동안의 교육에 의해 자신은 남자라는 이유 때문에 자식을 양육하는 일을 아내에게만 떠맡기던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는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스스로가 더 완전한 인간으로 나아가게 됨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더구나 딸 아이 셀레스트는 홀아비인 월터 씨를 배려할 정도로 속이 깊으면서도 때로는 공룡이 설사를 하다가 멸종했다는 아빠의 농담을 진담으로 듣고 학교 친구들에게 우쭐대며 이야기할 정도로 천진난만한 아이입니다. 또 '이건 내 몸이야'라며 목욕시키려는 아빠에 대항할 줄도 아는 맹랑한 아이입니다. 이 책 안에 월터 씨가 그려내고 있는 셀레스트는 참으로 귀엽고 슬기로운 아이입니다. 한번 쯤 만나고 싶은 아이예요.

월터 씨는 자신이 셀레스트를 위해 최대한 헌신하는 아빠로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건 우리 식의 '자기를 버리고 무조건 내주기만 하는 사랑'과 차이가 있습니다. 딸 아이를 골려먹는 일들은 둘째 치고, 아빠 자신이 누려야 할 삶의 가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거지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월터 씨가 셀레스트와 공원에 나갔을 때이지요. '연못의 물빛과 잘 어울리는 여자'에게 월터 씨가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그 여자와 어떻게든 가까이 하고 싶어서 월터 씨는 말을 건네고 차츰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때 셀레스트가 자리를 옮기자고 앙탈을 부립니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의 감정을 월터 씨는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아이를 위한다지만 자기의 감정까지 버리면서 아이만을 위하려는 것은 아니지요.

이혼한 홀아비로서 왜 삶의 외로움이 없겠어요. 월터 씨는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책에서 뿐 아니라, 셀레스트에게도 털어놓지요. 그리고 딸 아이에게 자기 마음을 이해시키고 싶어합니다. 자기의 삶과 아이들의 삶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하기 좋아하는 우리와는 아주 다른 풍경이지요.

이혼한 부모들의 입장이 왜 어렵지 않겠어요. 우리 사회에도 이혼율이 날로 늘어가고 있잖아요.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는 '이혼은 결혼이 생긴 지 불과 몇 주일 안 돼서 생긴 제도다'라고 했다잖습니까. 〈자살의 연구〉를 쓴 알바레즈는 그의 또다른 역저 〈이혼 이야기〉(원제 〈이혼의 연구〉)에서 이혼은 자살과 같은 크기의 스트레스를 준다면서 동서 고금의 이혼을 꼼꼼히 들여다 봅니다.

이혼한 부모들의 생활은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혼한 부모의 자녀 문제입니다. 편모 혹은 편부 슬하에서 자라나야 할 아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는 게 아니겠지요. 우리 나라 상황에서도 이혼 부모의 자녀 문제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린이 동화책을 꾸준히 써내고 있는 창작기획팀 '우리누리'에서 냈던 〈어느 날 갑자기〉(도서출판 그린비)도 그런 책이지요.

이혼 부모의 자녀들 이야기를 사례별로 수집해 재구성 혹은 창작해 낸〈어느 날 갑자기>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우리 이야기예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아이와 그 부모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데에는 늘 문제가 뒤따릅니다. 그래서 다른 가치를 희생하면서라도 헤어진 부모를 찾아 나서는 아이의 이야기는 가슴을 칩니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그렇게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 많아요.

〈셀레스트〉나 〈어느 날 갑자기〉나 아동 교육 이론서가 아닙니다. 그냥 실제 상황을 보여줄 뿐입니다. 아이 키우는 일에도 이론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 모든 이론의 가장 밑바닥에는 실제 아이의 상황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것 아니겠어요?

홀아비로서 딸 아이를 키우는 월터 씨는 〈셀레스트〉에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식으로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줄 뿐입니다. 가슴 뭉클한 느낌을 남기는 대목도, 배꼽을 잡고 웃어야 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 모든 에피소드들의 한 가운데에는 아이의 눈 높이에서 아이를 이해하고 아이와 아빠가 서로를 인정하는 인격체로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어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아이들을 바로 보는 힘이 되겠지요.

몸살이 심하게 든 월터 씨가 셀레스트와 함께 아팠던 적이 있습니다. '내 생전 그렇게 아픈 적도, 그렇게 서러웠던 적도 아마 없었을' 월터 씨는 '아픈 아이를 돌보는 아픈 아이' 됩니다. 그때 월터 씨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몹시 아팠다. 외로웠다. 겁이 났다. 추웠다. 그 누군가 나타나 나를, 그리고 셀레스트를 위로하고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 아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얼마나 서러운 것인가!"

아이 키우는 일이 어찌 혼자이기 때문에 서러운 것일까요?

고규홍 Books 편집장 (gohkh@joins.com)

▶이 글에서 이야기한 책들
* 셀레스트, 나의 딸 나의 친구 나의 선생님(D. L. 월터, 최진 옮김, 명경)
* 이혼 이야기, 결혼과 사랑의 새로운 의미(A. 알바레즈, 심정인 옮김, 명경)
* 어느 날 갑자기(우리누리 지음, 곽배희 추천, 도서출판 그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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