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투자 이렇게] "몇대가 지나면 혜택 보겠지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금액으로 따질 수 없지만 수천억원 가치는 될 겁니다. 몇대가 지나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깽깽이풀.삼지구엽초.모데비풀.두메부추.금강초롱.왜솜다리….

영동고속도로 양지 톨게이트에서 20여분 거리인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옥산리 한택식물원의 이택주(60)원장(園長). 그는 이름만 들어도 정겨운 자생식물을 21년째 어루만지고 있다.

20만평이나 되는 광활한 식물원에는 야생화 2천4백종을 포함해 6천여종, 수십만 포기의 꽃과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李씨는 이 식물원에 없는 꽃이라면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신한다.

한양대 토목공학과 출신의 건설회사 사장이던 李씨는 1975년 부업으로 목장을 시작했다. 헐값에 사두었던 선산에 초지를 조성하고 한우와 젖소 80여마리를 키웠다.

그러나 1백50만원에 구입해 애써 2년간 키운 소가 가격 폭락으로 70만원 밖에 안되는 일이 벌어진데 실망해 79년 목장을 포기하고 말았다.

李씨는 초지상태로 남아있는 목장의 산사태를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나무를 심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우리 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야생화가 있는 곳이라면 종자를 채집하기 위해 전국의 오지(奧地)를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1년에 한라산을 열번이나 오른 적도 있었다.

주변에서 '정신이 이상해졌다' 며 수근거리는데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투자만 있고 수입은 한푼 없어 그만둘까 고민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李씨는 건축으로 번 1백50억원을 몽땅 식물원에 쏟아부었다. 꽃과 나무를 빼고나면 빈털터리나 다름없다. 그러나 4년 전부터 조금 형편이 나아졌다.

우리 꽃 심기운동이 전개되면서 기업이나 학교.지방자치단체 등에 야생화를 분양해 1년에 3억~4억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 돈은 직원 16명의 월급을 주기에도 빠듯하다.

李씨는 식물원 가운데 6만평을 내년 중 일반에 공개할 계획이다.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이 우리 꽃과 자연에 관심을 갖도록 학습장을 제공하자는 뜻이다.

현재는 식물을 전공하는 교수.대학생과 사진작가들만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고 있다.

그는 요즘 편의시설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내색은 않지만 입장 수입이 생기면 식물원을 운영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종자전쟁 시대에 야생화는 우리 토양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는데 소중한 자원입니다. 또 먹이사슬의 첫 단계로서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야생화를 잘 보존해야 합니다."

李씨는 국가차원에서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야생화에 투자,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꿈은 미국 하버드대의 아널드식물원 같은 세계적인 식물원을 만드는 것이다.

다행히 외아들(30)이 식물원 안에 있는 20평짜리 단층집에 함께 살면서 같은 길을 걷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