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값 꼭지다” 인식 … 엔화대출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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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경기도에 있는 중소제조업체 임원인 신모씨는 최근 주거래은행을 찾아가 엔화대출을 알아봤다. 은행 측은 연 3%대 저금리로 운전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안내했다. 원화대출보다 2~3%포인트 싼 금리다. 신씨는 “금리도 매력적이지만 엔화가치가 이미 오를 대로 올라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며 “주변 중소기업 중 이런 이유로 엔화대출을 새로 받은 곳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소기업들이 다시 엔화대출 찾고 있다. 지난달 말 5개 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7589억 엔(약 11조원)으로 한 달 전보다 29억 엔(약 422억원) 늘었다. 2008년 10월(61억 엔 증가)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최근 엔화대출 규제가 강화된 점을 고려하면 작지 않은 증가폭이다. 현재 엔화대출 시설자금은 중소제조업체만, 운전자금은 실수요자금만 받을 수 있다.

 5개 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2008년 11월 말(9323억 엔)을 정점으로 가파르게 줄어왔다. 금융위기로 엔화 값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자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 말 엔화가치가 1500원 선을 돌파한 뒤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제 엔화 값이 꼭지 아니냐’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이에 따라 엔화가 비싼 지금 엔화대출을 받아, 나중에 쌀 때 갚으려는 중소기업들이 다시 생겨났다. 환율에서도 벌고, 금리에서도 이득을 보겠다는 욕심이다. 익명을 원한 은행의 외화대출 담당자는 “지난달엔 원화자금이 있는데도 환차익을 노리고 예금을 담보로 엔화대출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엔화가치 하락을 기대하고 엔화대출을 받는 것에 대해선 은행도 회의적이다. 한 은행의 부행장은 “중소기업들에 엔화대출을 언제 갚을 거냐고 물어보면 ‘엔화 값이 1100원 되면 갚겠다’고 하는데, 이래서는 중소기업에서 절대 못 벗어난다”고 잘라 말했다. 본업이 아닌 환율로 이익을 내려는 건 위험한 생각이란 지적이다. 실제 2006~2007년 엔화대출을 받은 중소기업들은 두 배로 불어난 대출금 압박에 아직도 시달리고 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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