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타〉전용극장 마련 연중무휴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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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연극사에 한 획을 긋는 행사가 지난 1일 열렸다.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가 서울 정동에 국내 첫 전용극장(02-736-8288)을 개관하고 연중무휴 체제에 들어갔다.

극장난으로 '단타' 공연만 성행하는 우리 연극계에도 기업형 '장타' 공연이 시작한 것. 1997년 10월 초연 이후 만 3년이 안되는 짧은 기간에 달성한 기록적 사건이다. 그러나 그런 영광은 그저 오지 않는 법. 〈난타〉의 뒷면에는 엄청난 땀이 숨어 있다.

송승환 대표와 배우 김문수.이범찬씨, 기획자 김종헌씨를 만나〈난타〉의 발자취를 에피소드로 정리했다.

◇ 공동창작의 승리〓 "우리가 실험용 쥐냐. " 96년 기획 당시〈난타〉배우들은 불만이 컸다.

주방기구로 사물놀이 리듬을 살리면 그럴듯한 공연이 되겠다는 개념만 있었을 뿐 변변한 대본이나 구성안 하나 없었기 때문. 배우.스태프들이 연일 머리를 짜내며 이야기를 채워나갔다.

당초 한국.일본.중국.서양요리사의 경연대회로 꾸며봤으나 얘기가 약해 주방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대에 올리지 못하고 폐기처분한 장면만 40여개. 98년부턴 남.녀 주방장 등 배우 4명에 지배인을 합류시켜 드라마를 강화했다.

실제로 한 호텔의 회장이 TV로 공연장면을 보고 "저 사람들 어느 호텔 요리사냐. 우리도 연습해 TV에 나가자" 고 지시했을 정도다.

현재〈난타〉공연팀은 4개. 태극기 색깔을 구현한 블루.화이트.레드.블랙팀이다. 향후 깃봉을 나타내는 엘로 혹은 골드팀을 만들 계획이다.

◇ 만만찮은 소품〓초연 당시 배우들은 남대문 시장을 샅샅이 뒤졌다. 칼이란 칼, 냄비란 냄비, 도마란 도마는 모두 두들겨 보았다. 일견 단순한 공연 같지만 소품이 무려 1백여개나 들어간다.

해외공연에 나가면 소품으로 대형 컨테이너 한 대를 거뜬히 채운다. 가장 많이 소모되는 용품은 역시 칼. 한달 공연에 평균 1백 자루가 필요하다. 지금껏 5천여 자루가 들어갔다. 다음은 도마.냄비 순. 그동안 5백여개가 없어졌다. 수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야채준비도 쉽지 않다.

1회 공연에 보통 15~20여만원을 지출한다. 항상 신선한 재료를 확보해야 하는 까닭에 단원들은 외국에 가도 시장을 먼저 들르고, 공연장에선 냉장고가 있는지 확인한다.

배우마다 양파.오이.당근 등 할당품목이 있다. 외국극장에선 불을 사용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것도 필수사항.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듯 이제 배우들의 요리 솜씨는 웬만한 주방장을 뺨친다고 한다.

◇ 열쇠는 마케팅〓처음부터 기업화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96년 12월 주식회사를 차리고 세계를 향한 공연을 준비했다.

정통 언어연극으론 외국에 진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 90년대 초부터 불기 시작한 넌버벌(non-verbal.비언어)퍼포먼스를 전략종목으로 선택했다.

〈난타〉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지난해 8월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 직전엔 현지 기자들을 뉴욕 공연장으로 초청해 분위기를 띄우고, 에든버러 전역에 포스터를 깔아 전회 매진 기록을 세웠다. 특히 외국 공연계에 어두운 우리 현실을 감안해 미국 브로드웨이 아시아를 에이전트(대리인)로 계약하고 뚫기 어려운 외국시장을 적절하게 공략했다.

◇ 제2의 시작〓 〈난타〉는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첫째 연극의 드라마가 약하고, 둘째 리듬의 세련미가 부족하다는 것. 반면 극단측은 작품 자체가 사실주의 연극도, 정식 타악공연도 아닌 양자를 결합한 대중극이라고 반박한다. 그리고 기존의 공연수익 대부분을 이번 전용관에 쏟아부었다. 새로운 투자가 없이는 새로운 성과도 없다는 판단에서다.

송대표는 지난 5월에야〈난타〉로 첫 월급 1백80만원을 받았다. 이번엔 미국의 전문 쇼닥터를 초청해 작품의 스피드와 오락성을 보완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 대한 호소력을 높이려는 시도다.

또 캐릭터.광고.게임.이벤트 공연 등 다양한 부대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화는 철저히 상품이라는 계산이다. 물론 이것이 연극의 유일한 대안은 아닐 것. 하지만 연극의 새 지평을 개척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애거서 크리스티의〈쥐덫〉을 공연하는 런던의 세인트 마틴 극장엔 48년째란 간판이 있습니다. 우리라고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지요. 우리가 우리 것을 아낄 때 외국인도 우리 것을 사랑할 겁니다." 송대표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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