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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가 무슨 벼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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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심상복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

10월 일자리가 지난해 동월에 비해 50만 개나 늘었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전달에 비해서는 24만 개 더 많았다. 덕분에 10월 실업률은 2.9%를 기록했다. 3% 아래의 실업률은 무려 9년 만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걸 ‘고용 대박’이라고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수치만 그럴 뿐 고용의 질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늘어난 일자리의 절반이 50~60대 몫이었다. 20대 일터는 늘지 않았고, 30대 취업은 오히려 줄었다고 한다.

 ‘고용 대박’이란 표현은 사려 깊지 못하지만 취업 현장이 이런 식으로 변한 건 꽤나 오래됐다. 양질의 일자리, 그게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뚝 떨어질 걸 예상했던 사람이 있단 말인가. 늘어난 일자리가 허접한 것이라고 하지만 당장 뾰족한 수는 없다. 더구나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도 아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안다. 문제는 그런 일자리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20~30대다. 대기업이라도 지방은 싫다, 수도권이라도 중소기업은 싫다고 한다. 취업전쟁이라고 하지만 현장에선 아직도 이렇게 배부른 소리가 넘쳐난다.

 벤츠 좋은 건 다 안다. 하지만 누구나 벤츠를 타지는 못한다. 사서 굴릴 능력이 되는 사람만 탄다. 다른 이들은 그보다 낮은 급의 차를 산다. 소형차나 경차를 타는 사람도 많다. 어떤 이는 벤츠보다 비싼 스포츠카를 사기도 한다. 다 능력과 분수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시험과 면접을 통과한 극히 일부만 들어간다. 다른 젊은이들은 그보다 좀 못한 직장을 찾아간다. 여기저기 대기업을 다 둘러보고 안 되면 중견기업 문을 두드린다. 그것도 안 되는 사람은 중소기업을 찾아간다? 아니다. 답은 ‘그냥 쉰다’다.

 돈이 없어 차를 못 사는 사람도 있다. 돈이 있어도 작은 차를 타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만큼 대중교통이 좋은 나라도 없다며 차 없이 다니는 게 별로 불편하지 않다고 말한다. 차가 없는 사람은 의도하진 않았다 해도 애국자다. 대기 오염이나 교통 체증, 에너지 소비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 없이 뒹구는 청년 백수는 사회적·국가적으로 부담덩어리다. 한창 일할 나이에 경제활동에 가담하지 않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짓이다. 이들은 일하고 싶은데 일할 곳이 없다고 항변한다. “번듯한 대학을 나온 내가 어떻게 이름도 없는 중소기업에 가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크나큰 착각이다. 괜찮은 대학을 나오면 무조건 취직된다는 법이라도 어디 있단 말인가. 입사하고 싶은 기업이 있지만 그게 안 되면 그보다 못한 일터를 찾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중소기업은 아예 취업대상으로 생각지도 않는 젊은이들이 많다.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데는 학력 인플레와 함께 우리의 채용문화에도 일부 문제가 있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선 사람을 뽑을 때 그 바닥에서 일한 경험과 평판을 중시한다. 경력자 채용이 주류다. 우리는 공채 위주다. 최근 들어 경력직 채용이 늘고 있지만 서자 취급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스카우트되는 일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다. 일부에선 이걸 대기업의 인력 빼가기라고 비난하는 일도 잦다.

 비정규직이 600만 명에 달했다. 고용의 질을 말할 때 늘 거론되는 수치다. 취업 자체가 어렵다 보니 번듯한 직장에는 비정규직에도 사람이 몰린다. 대기업 사정은 이렇지만 중소기업 사장들은 비정규직이란 단어를 잘 모른다. 정식 직원도 지원자가 없어 못 뽑는 판이다. 그래서 채용하는 게 외국인이다. 중국·베트남·방글라데시·스리랑카가 많고 영어가 필요한 곳에는 인도나 필리핀 출신이 인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인력 부족으로 쩔쩔맨다. 지난 6월 정부가 5인 이상 근로자 3만여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올 1분기에 필요한 직원을 뽑지 못한 경우가 11만4400명에 달했다. 지난해 동기보다 4000여 명 늘어난 수치다. 이런 현상은 300명 미만 업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다들 좋은 집에서 살고 싶지만 형편이 안 돼 서민주택에 살거나 남의 집에 세를 들기도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 갈 능력이 없는 사람은 동네 식당을 가게 마련이다. 이런 상식이 20~30대 취업현장에선 안 통한다. 돈도 없으면서 고급 아파트와 비싼 식당을 고집한다. 그러곤 백수가 무슨 벼슬이라도 된 듯 정부를 욕한다. 온갖 사회문제와 관련, 툭하면 대기업 탓이라고 비난하지만 취업 얘기만 나오면 싹 달라진다. 그 회사에 못 들어가 안달이다. 심각한 이중성이다. 젊은 세대의 이 모순, 거친 현장에 도전함으로써 떨쳐 버려라.

심상복 경제연구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