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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소재 선진 강국이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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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지난달 영암에서 개최된 F1 코리아 그랑프리는 최고시속 350㎞에 달하는 경주차들의 숨막히는 경쟁으로 16만 관람객을 사로잡았다. F1에 출전하는 차량들은 대개 600㎏이 채 되지 않는 무게에서 최대 750마력의 출력을 뿜어낸다. 일반 차량에 비해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 무게에서 3배 이상의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탄성, 강도, 내열성이 높으면서도 다른 금속에 비해 월등히 가벼운 카본 파이버라는 최첨단 소재 덕분이다. 최고의 소재부품이 최고 차량, 그리고 최고 레이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부품과 소재 분야보다는 완제품 조립에 의존해 산업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중국의 급격한 성장과 해외 여러 곳에 공장을 둔 글로벌 기업들이 등장하고 완제품의 조립생산 능력이 세계적으로 평준화되면서, 핵심소재와 첨단부품 생산력이 국가경쟁력의 핵심요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부품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깨닫고 2001년 부품소재 특별법을 시행해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지난 10년간 부품소재 분야에서 수출 3.7배, 무역흑자 29배를 기록하면서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에서 전통의 산업 강국인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추월해 부품소재 분야 세계 6위에 올랐다. 지난 9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GP Japan 한국산업전에서는 세계 최고 품질을 자랑하는 도요타, 소니, 히타치, 닛산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우리 부품소재 기업들의 부스를 찾아 구매 및 거래확대 의사를 밝히면서, 예전과 달라진 우리 부품소재 산업의 수준을 실감케 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세계 수준에 접근한 부품과 달리 첨단소재 분야는 아직 선진국과의 격차가 4~7년에 이를 정도로 뒤져 있는 상태다. 특히 반도체, LCD 등 우리가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는 IT분야 핵심소재는 대부분 일본산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의 반도체, LCD 수출이 늘수록 대일 무역적자 규모가 늘어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또한 기술개발, 전문기술인력 등 중소 규모의 부품소재 기업들이 자체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기반이 약한 것은 매우 염려스러운 부분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부품소재 선진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하다. 세계 최초, 그리고 세계 최고의 소재부품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특히 미래 세계시장을 독과점할 수 있는 전략적인 소재 개발을 통해 해당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도약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소비자들의 니즈를 파악하려는 노력, 소비자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소비자의 감성을 고려한 소재의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글로벌 시장의 빠른 트렌드 변화를 따라잡고, 이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파트너십을 통해 해외시장 공동진출 등 건전한 산업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토대로 우리나라가 2020년도에는 소재부품 분야 세계 4대 강국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10년 뒤에는 ‘Made in Korea’를 달고 있는 우리 자동차가 F1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는 짜릿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