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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대담] '코스닥 등록심사 문제없나'

중앙일보

입력

코스닥시장을 바라보는 벤처기업은 대입준비를 하고 있는 고3생에게 비유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려는 것과 같이 코스닥시장에 목을 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코스닥등록 심사에서 퇴짜맞는 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벤처업계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이들은 당국이 벤처업계의 생태를 잘 모르고 있다며 볼멘소리도 한다. 이에 코스닥 진입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정의동 코스닥위원장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이금룡 옥션 사장과의 긴급대담을 마련했다.

▶정의동(鄭義東)위원장〓최근 들어 적자기업은 코스닥심사를 받을 생각도 하지 말라느니 하는 말들이 벤처업계에 떠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가장 중요한 심사의 잣대는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성이다. 재무구조 등 공개기업으로서 기본 요건을 따져보는 일은 당연하다. 이것은 형식적인 절차로서가 아니라 투자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일부 인터넷기업들은 초창기라서 그런지 이 점에서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이금룡(李今龍)사장〓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장성이다. 현재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도 봐야 한다.

지금까지 탈락이나 재심의 결정을 받은 기업들 가운데 37%가 '사업성 미비' 때문이라고 하는데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벤처기업들의 경우 업종도 다양하고 외부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종사자들조차 사업전망을 쉽게 하지 못하는데 코스닥위원회가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 잘 모르겠다.

▶鄭〓코스닥위원회는 단순히 심사위원 몇명이 몇가지 서류를 들춰보고 통과여부를 결정하는 곳이 아니다. 많은 실무인력들이 오랫동안 기업들을 평가해 왔고, 전문기술과 같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관련 기관에 평가를 의뢰하거나 자문을 한다.

이런 분석을 토대로 심사위원들이 그 기업의 장래나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육성의 필요성,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 그리고 향후 시장에서 투자위험도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판단하는 것이다.

▶李〓그러나 한차례 보류판정을 거쳐 어렵사리 승인결정을 받은 우리 회사(옥션)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점이 있다. 사업성과 향후 전망을 본다고 하지만, 사실 회계서류나 수치 같은 것만 너무 챙기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실적 같은 거야 회계사와 주간사를 맡은 증권사에 책임지고 맡기면 될 것 같은데, 위원회의 심사실무진에 공인회계사들이 많다 보니 자꾸 과거 실적에 초점을 맞춘다는 인상을 받았다. 심사를 받았던 다른 기업들의 경영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鄭〓심사결과가 자꾸 논란거리가 되는 이유 중에는 우리가 탈락사유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심사 중에 파악된 문제점들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그 기업에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탈락이유를 공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탈락업체들에는 무슨 사유로 탈락했는지 충분히 설명해준다. 그런데 탈락기업들은 자신들의 문제는 접어두고 마치 심사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녀 책임을 코스닥위원회로 미루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만약 제3자가 심사과정과 탈락사유를 안다면 수긍할 것으로 확신한다.

▶李〓심사 준비서류도 제대로 못 만드는 기업이 어떻게 등록신청을 하느냐는 말도 맞지만, 사실 닷컴기업들의 경우 사업성이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업 전반을 볼 줄 아는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그 기업의 가능성을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업성에 대한 판단보다는 회계사들이 수치 위주로 심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준은 전통산업에 유리한 반면 닷컴업계의 신생기업들엔 불리하다.

▶鄭〓벤처기업이나 인터넷기업이 코스닥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을 잘 알고 있고, 이미 심사과정에서도 이들 기업들에는 기존 기업들과는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 만약 흑자니 적자니 하는 것에 매달렸다면 옥션이 어떻게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겠는가. 옥션이 비록 적자기업이지만 인터넷경매업체의 선두로서 수익모델과 향후 경쟁력.가능성 등을 감안해 승인한 것이다.

▶李〓옥션에 대해서는 향후 수익성을 인정한 케이스라고 본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여전히 벤처기업의 향후 전망이나 사업성을 보는 위원회의 시각이 보수적인 것으로 판단한다. 위원회가 사업성을 본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을 것이니 이를 시장에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사업성이 빈약하면 시장에서 주가로 바로 평가받지 않겠는가.

▶鄭〓바로 얼마 전에 한 주간증권사가 특정기업 자산의 10%를 심사서류에서 누락시켜 말썽을 빚은 적이 있다. 이것이 나중에 금융감독원에 걸렸는데,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주간사에 심사의 일부분을 일임하고 시장의 판단을 바랄 수 있겠는가. 그들은 실수였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 이후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아무 것도 모르던 일반 투자자들이 그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李〓벤처업계에는 일종의 생태계라는 것이 있다. 최초의 창업자가 있고, 이어 주변 친지에게 돈을 빌리고, 그 다음에는 엔젤투자자와 창업투자회사들의 지원을 받아 본격적으로 기업을 키운 뒤 코스닥에 진입하는 식으로 생태계가 형성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마지막 관문인 코스닥 심사가 강화되면서 벤처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요즘 테헤란로 일대에서 닷컴기업 위기론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鄭〓수긍한다. 하지만 코스닥시장은 전문지식 등이 부족한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공개된 시장이다. 투자자들이 위험 가능성을 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받은 공모주가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공모주는 당연히 올라가야지 왜 떨어지느냐" 고 항의전화를 해대는 게 현실이다.

▶李〓올들어 코스닥심사가 강화되고, 또 향후 사업성보다 현재의 매출과 실적을 따진다는 말이 자꾸 도니까 창투사나 엔젤들도 보수적인 관점에서 자꾸 기업들을 판단하고 있다. 잘 아시겠지만 창투사나 엔젤들은 코스닥등록을 통해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사람들이다. 전에 이들은 향후 가능성을 보고 과감히 투자했으나 이제는 코스닥에 등록될 것이냐 말 것이냐를 가장 먼저 따지고, 그러다 보니 심사기준으로 알려진 과거 실적에 매달려 소극적이고 보수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닷컴기업의 대부분은 사업 특성상 성장성은 있어도 지금 당장의 실적은 저조한 편이다. 그러니 아무리 사업성이 좋은 기업이라도 돈 구할 데가 없어지고 있다. 조금만 자금지원을 받으면 성공할 기업이 자칫 문을 닫을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鄭〓실패를 거듭하면 투자자들도 깨닫겠지만, 이를 알 때까지 그냥 놔두는 것은 방임일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자기 회사의 사업성이 좋고 성장가능성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하지만 남들에게 사업성이나 성장성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비즈니스모델을 보여주거나 독점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 것도 없이, 무조건 전망있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코스닥에 등록해 잘 모르는 '개미' 들로부터 돈만 끌어모아서는 곤란하다. 미래의 위험부담을 일반투자자들에게 지울 수는 없는 일이다.

▶李〓코스닥시장의 주요 기능을 도외시해서도 안된다. 증권시장이 존재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가 기업의 자금조달이다. 특히 코스닥시장은 거래소와 달리 향후 가능성이 큰 벤처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이다. 지난해 코스닥열풍이 분 것도 그런 때문이 아닌가.

▶鄭〓전문지식을 갖추고 그 회사의 성장가능성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내고, 그리고 과감히 투자하는 것은 창투사나 엔젤들의 몫이다. 그것이 바로 고위험-고수익이 아닌가.

창투사나 엔젤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투자기업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몇 배씩 튀길 생각만 해서는 곤란하다.

▶李〓코스닥 투자의 위험성이 크다는 것은 투자자들도 이젠 잘 안다고 본다. 만약 현재와 같은 식으로 심사가 계속 이뤄진다면 이미 돈을 많이 번 기업들만이 코스닥에 등록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기업들은 코스닥등록으로 모은 돈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필요한 기업에 돈이 돌아가지 않게 된다.

그리고 코스닥시장 등록여부는 단순한 자금조달 성패를 떠나 국내 인터넷기업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때 해외투자자들의 신뢰도나 업무제휴 등의 파트너로 인정받는 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鄭〓코스닥위원회의 가장 큰 목적은 코스닥시장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남대문시장과 백화점은 다르다.

남대문은 싸지만 불량품일 위험이 크고 반품도 잘 안된다. 백화점은 좀 비싸도 좋은 제품이고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소비자들의 기대치도 다르고, 그에 상응해 소비자들이 감내할 수준도 다른 것이다. 어떤 백화점에 입점한 업체가 싸구려 물건을 내놓고 불량상품을 판다면, 문제는 그 업체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 전체의 문제가 된다.

지속되면 다른 업체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고 그 결과 백화점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된다.

엔젤이나 창투사가 참여하고 인터넷공모가 이뤄지는 프리코스닥시장이 남대문이라면 코스닥시장은 백화점이다.
'실적으로 검증되지도 않고, 향후 가능성도 뚜렷하지 않은 업체들을 어떻게 백화점에 들여놓을 수 있겠는가.
'세계화를 위해서도 코스닥에 등록시켜 줘야 한다는 말은 본말이 전도된 얘기라고 본다.

▶李〓현재 코스닥등록을 앞두고 있거나 이를 겨냥해 뛰고 있는 벤처기업들의 어려움에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코스닥 등록기업이 줄어들어 시장 자체가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투자자보호를 우선시해야 하는 코스닥위원회의 입장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산업의 발전 차원에서도 문제를 봐줬으면 한다.

▶鄭〓오늘 다소 딱딱하게 얘기했지만 벤처기업들의 고충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지적해주신 사안들을 앞으로 정책에 많이 반영하도록 힘쓰겠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코스닥시장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벤처기업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서로 뜻을 모아 투자자들의 신뢰 속에 시장이 영속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노력하자.

진행.정리〓심상복.이효준 기자

◇ 정의동(鄭義東)위원장

1948년생
1972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1993 재무부 뉴욕주재 총영사관
1997 재정경제원 공보관
1998 재정경제부 국고국장
2000 코스닥위원회 위원장

◇ 이금룡(李今龍)사장

1951년생
1976 성균관대 법학과졸업
1977 삼성물산 수출입영업 담당
1998 삼성물산 인터넷사업부장(이사)
1999 옥션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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