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으로 컴백한 ‘편지’의 싱어송라이터 김광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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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은 “다시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전업 뮤지션’으로 돌아온 그에게선 생기가 느껴
졌다. “아이돌 그룹에게도 좋은 곡을 건네고 싶다”고 했다. [김민규 기자]

고백부터 올립니다. 가요계에 아리따운 멜로디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투덜대곤 했습니다. 최근 갑작스레 당신의 이름이 떠오르기 전만 해도 그랬습니다. 김광진(47). 이 이름을 왜 진즉 떠올리지 못했을까요.

 1994년 당신이 박용준과 함께 꾸린 ‘더 클래식’이란 듀오를 기억합니다. 당신이 작곡하고 부른 ‘마법의 성’은 온 국민이 따라 부를 정도로 인기였죠. 물론 그 이전에도 당신은 ‘히트곡 메이커’였습니다. 91년 발표된 한동준의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가 데뷔작이었지요. ‘덩크슛(이승환)’ ‘처음 느낌 그대로(이소라)’ 등 90년대 히트곡 가운데 다수가 당신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주춤했습니다. ‘마법의 성’ 이후 ‘편지(2000)’ ‘동경소녀(2002)’ 등 솔로 음반을 냈지만,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았지요. 당신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음악에 반응이 없다는 건 내가 대중에게 임팩트(impact)를 주지 못한 것이다. 음악이 좋았다면 어떻게든 반응이 왔을 것이다.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이 말에선 딱 하나만 진실입니다. 좋은 음악은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온다는 것. 그 진실이 요즘 입증되고 있습니다. 엠넷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3’를 잘 아시겠죠. 그 오디션 무대에서 당신의 노래가 4곡이나 채택됐습니다. ‘동경소녀(버스커버스커)’ ‘편지(이정아)’ ‘진심(크리스)’ ‘여우야(투개월)’ 등입니다. 방송이 나간 직후, 대중은 당신의 음악에 다시 열광했습니다. 온갖 음악 차트를 휩쓸었습니다.

 당신의 곡 ‘편지’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7일 오후 당신을 만나고 돌아오면서 당신과의 인터뷰를 편지에 담기로 작정했습니다. 당신의 음악은 여기가 끝도 아니고, 당신이 돌아설 이유가 전혀 없다고 꼭 말하고 싶었습니다.

 음악에서 잠시 멀어진 사이, 당신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이자 펀드매니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 올 6월 동부자산운용 투자전략 본부장에서 물러났습니다. 당신은 결연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음악에만 전념하겠다.” 당신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대중음악가로 살 거란 생각을 했다.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나 행복하다. 다시 음악을 시작하려는데 때마침 ‘슈스케3’에서 내 음악을 다뤄서 화제가 됐다.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인 것 같다.”

 여전히 당신의 멜로디는 대중음악의 교과서처럼 여겨집니다. 당신은 음악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걸까요.

 “좋은 곡을 쓰고야 말겠다는 열망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다음 멜로디부터 만든다. 음악이 완성되면 이미지를 떠올리고 가사를 쓴다. 영문학을 전공한 아내와 가사를 함께 쓸 때도 많다.”

 당신의 음악은 대체로 슬픕니다. ‘여우야’ ‘동경소녀’ 같은 밝은 곡에서조차 울적함이 읽힙니다. 알고 보니 당신의 인생관이 꼭 그랬더군요.

 “우울한 정서를 타고난 것 같다. 2년 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더 또렷해졌다. 죽음 이후엔 결국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다. 내 음악이 근본적으로 우울한 이유다.”

 자기 안의 우울함을 고백하면서도 당신의 말에는 생기가 돌았습니다. 27일 오후 5시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에서 펼치는 단독 콘서트 때문이겠지요. 당신은 아이마냥 천진하게 말했습니다.

 “뮤지션으로서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고 느낀다. 내일 죽더라도 여한은 없지만 좋은 곡을 좀 더 남기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 음악으로 뮤지컬도 만들고 싶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뮤지션입니다. 애널리스트의 차가운 분석보다 싱어 송라이터의 따스한 멜로디가 본래 당신의 것처럼 여겨집니다. 내년에 ‘더 클래식’ 음반을 낼 계획이라고 하셨죠? 당신의 아리따운 멜로디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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