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판사·의사·교사도 디지털로 대체되는 시대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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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와타 겐

‘테크플러스 2011’이 개막한 9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전당에선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Ideas Changing the World)’라는 슬로건으로 ‘지식 콘서트’가 펼쳐졌다. 무대에 오른 연사는 기술·경영·경제·뉴미디어·문화 등 각 분야의 혁신을 이끄는 전문가들이었고, 관객은 새로운 지식을 원하는 시민과 학생이었다. 행사장 3500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거장들의 강연에 귀 기울이며 지식을 나누고 소통하는 데 동참했다.

올해 3회째인 ‘테크플러스 2011’의 주제는 ‘기술과 나의 만남’.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은 “기술과 인간과 예술이 만나면 사회 그리고 국가가 부자가 된다”며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은 테크(tech:기술·경제·문화·인간의 영어 단어 앞글자의 조합)가 더해졌을 때 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포럼은 9~10일 이틀간 ▶명품 기술의 발견 ▶기술, 감동을 덧입다 ▶창조적 공간의 기술 ▶네트워크의 힘, 소셜 테크놀러지 ▶‘tech+’형 리더의 출현 등 산업기술 혁신의 화두를 5개 프로그램으로 구성해 진행된다.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주제로 9일 서울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테크플러스 2011’은 참석자들이 혁신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었다. 첫 연사로 무대에 선 브라이언 아서 미국 샌타페이 연구소 교수는 구글의 무인 자동차를 예로 들며 “디지털 기술이 인간의 직관을 대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변선구 기자]

첫날 연사들은 인간과 기술 간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이어갔다.

첫 연사 브라이언 아서 미국 샌타페이 연구소 교수는 “우리 경제의 본질을 바꾸는 심오한 변화가 일어난다”며 “경제가 디지털화하면서 기술이 인간의 직관을 대신하는 업무까지 수행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잡계 경제학의 대가이자 기술 진보의 예언자로 불리는 아서 교수는 “50~60년마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 경제와 산업·사회 나아가 정부까지 바꿔왔다”며 “지금의 변화는 숫자만 다루던 컴퓨터가 섬세하고 지능화된 과제까지 수행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구글의 무인 자동차를 예로 들었다. 무인 자동차는 스스로 주변 교통상황, 신호, 보행자를 감지하고 판단해 대응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했고, 140마일(225km)을 사고 없이 주행했다고 소개했다.

 아서 교수는 “경제를 사람에 비유하면 200년 전 산업혁명 당시 동력을 얻게 된 게 근육을 얻은 것이라면 오늘날 디지털화한 경제는 지능과 신경망이 생겨난 셈”이라고 설명했다. 증기 엔진 발명과 기계의 등장이 인류 경제발전의 한 획을 그었다면 최근 컴퓨터 등 기술의 발전으로 나타나는 경제 디지털화는 경제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변화라는 것이다.

 아서 교수는 물리적 경제를 나무로, 디지털 경제를 뿌리로 봤다. ‘제2의 경제’로 부르는 디지털 경제는 땅밑에서 여러 대의 컴퓨터가 긴밀히 연결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조용하게,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상시 작동하면서 경제를 빠르게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항의 무인 체크인 시스템을 예로 들었다. 신분증을 체크인 기계에 밀어넣으면 항공권 접수, 좌석 배정, 보안 체크 등 절차를 불과 3~4초 만에 완료하고 좌석표를 내주는데, 이 3~4초의 순간이 디지털 경제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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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서 교수는 디지털 경제 현상의 확산으로 일자리 감소는 가속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교사처럼 감정 교감을 필요로 하거나 의사·변호사·판사같이 사람의 판단을 요하는 일은 당분간은 사람이 수행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마저 대체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는 “20~30년 후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면서 “디지털 경제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일자리는 가라앉겠지만 이를 잘 활용하면 인간은 문화를 더 향유하면서 더 깊이 있고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 명품 오디오업체 마란츠의 이시와타 겐 고문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융합을 이야기했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의 전통적 감수성에 첨단 기술을 결합해 명품이 탄생한다”고 말했다. 디지털은 원음을 듣게 해주는 최고의 기술이지만 사람은 아날로그 소리만 식별해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둘을 가장 잘 다룰 때만 최고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대한 원음에 가깝게 음악을 재생하는 게 오디오업의 본질”이라며 “고전과 첨단의 만남으로 마음을 적시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과 사람 간의 관계도 강조했다. “음악은 개인화된 추억이고, 오디오 제품은 그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명사들은 아이디어와 영감을 얻는 방법을 청중과 공유했다. 세계 최정상급 애니메이터인 장 폴로 건국대 교수는 “아이디어란 낡은 것을 새롭게 조합하는 것”이라면서 “어떤 아이디어든 떠오르면 뭐라도 만들어보면서 아이디어를 갖고 논다”고 소개했다.

공예가인 김진송 현실문화연구 대표는 “디지털 시대에도 상상력과 창의력은 아날로그에 기반을 둔다”고 말했다. 그는 “목수가 나무를 다루듯 세상 사람 누구나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 속 물질을 쓰임새 있게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이때 쓰는 각자의 기술이 바로 창의성”이라고 말했다.

박현영·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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