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심장을 줄여라 … 엔진 다운사이징 레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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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최재권

앞으로 중·대형 세단에 3.5L 이상 대(大)배기량 엔진은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공룡이 지구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한 것처럼 대배기량 가솔린 엔진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환경규제로 자취를 감춘다.

전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강화되는 연비 향상 및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낮은 배기량에서도 높은 출력을 내는 엔진 다운사이징에 주력해서다.

 BMW코리아는 올해 수입차 최다 판매 모델인 528i에 엔진 배기량을 줄인 신형 모델을 이달 중순 내놓는다. 기존 3.0L V형 6기통(V6) 대신 2.0L 4기통 터보 엔진을 달았다. BMW 본사는 지난해부터 배기량을 줄이면서도 출력과 연비는 향상시키는 다운사이징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중형차인 5시리즈를 대표하던 V6 엔진 대신 4기통으로 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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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회사의 모델 이름은 5년 전만 해도 배기량을 의미했다. 530은 중형 세단을 의미하는 ‘5’에 3.0L 가솔린 엔진을 단 차를 뜻했다. 하지만 한 단계 낮은 저배기량 엔진을 달면서 출력은 기존 엔진만큼 끌어올려 차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신형 528i에 달린 2.0L 엔진은 최고출력이 245마력으로 기존 3.0L V6 엔진과 같다.

그러나 연비와 CO2(이산화탄소) 배출량을 10% 이상 줄였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6.3초로 기존 대비 0.4초 빨라졌다. 연비뿐 아니라 성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이처럼 2.0L 가솔린 엔진에 터보 기술을 이용해 기존 V6 3.0L급 출력을 내는 다운사이징은 유럽 업체들이 주도했다. 2008년부터는 미국에서도 붐이 일면서 포드·GM에서 개발이 한창이다.

 아우디는 2008년부터 엔진 다운사이징에 주력해 중형 A6세단에 들어가는 4.2L V8 엔진을 3.0L V6 수퍼차저로 대체했다. 벤츠는 올해 신형 CLS AMG를 내놓으면서 배기량을 0.8L 줄이는 방식으로 다운사이징 했다.

디젤 엔진의 대가인 푸조는 중형 세단인 508과 SUV 3008에 과거 소형으로 분류되던 1.6L 터보 디젤을 달았다. 포드의 다운사이징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다. V6·V8 4.0L 대형 엔진을 쓰던 SUV 익스플로러에 배기량을 절반으로 낮춘 2.0L 에코부스트(터보) 엔진을 달았다. 내년 초 한국에 선보이는 이 차는 기존 엔진보다 출력은 20% 이상 높였고 CO2는 15% 줄였다.

 상대적으로 일본·한국 업체들이 엔진 다운사이징에 뒤진 편이다. 특히 일본 업체들은 하이브리드나 자연흡기 엔진의 효율성 개선에 집중하면서 터보 기술은 가장 열세다. 미국에 주력한 닛산은 3.7, 5.0L급 대배기량에 치중해 엔진 다운사이징에 가장 뒤진 업체로 꼽힌다.

현대·기아차도 연간 1만 대도 못 파는 4.6, 5.0L 대배기량 엔진 개발에 집중하다 3년 전 터보 기술로 돌아섰다. 올해 중반 선보인 2.0L 4기통 터보 엔진은 최고 271마력에 37.2㎏·m 토크로 최고 출력으로는 세계 정상급 수준이다.

 엔진 전문 개발업체인 테너지 최재권 사장은 “엔진 다운사이징은 피할 수 없는 추세다. 기존 V8은 V6로, V6는 4기통 2.0L나 2.4L로 모두 대체돼 수년 내 4.0L 이상 대형 엔진은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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