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해외칼럼

이명박·오바마 회담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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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크리스토퍼 힐
덴버대학 조세프 코벨
국제대학 학장

외국 정상들의 미국 국빈방문은 종종 미국 국내 정치 상황을 반영한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도 예외는 아니다.

 이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물론 국빈만찬과 국무부 벤 프랭클린 볼룸의 공식 오찬에 참석했고, 국회의장 예방과 상·하원 합동연설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함께 미국 자동차산업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미시간 자동차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 모든 행사는 익숙한 외교 관례지만 이 대통령의 방미에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한·미 정상회담의 의제가 한반도나 동북아시아 문제에만 국한된다면 오산이다. 두 사람은 국제사회의 모든 문제를 논의했다. 이는 오랜 기간 유럽과 협력관계를 이어온 미국의 관심이 태평양 지역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두 나라의 긴밀한 관계를 측정하는 방법으로 양국 우호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를 본다. 하지만 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정권의 성향과 관계 없이 변함없는 우호관계를 이어 가느냐다. 미국과 한국은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권 시절 관계가 가까워졌고, 오바마의 민주당 정권도 이를 이어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좌파 성향의 노무현 대통령과 보수 성향의 부시 대통령이, 그리고 현재 우익 성향의 이 대통령이 부시에 이어 개혁 성향의 오바마 대통령과 외교적 성과를 내고 있다. 이렇듯 두 나라는 사상적으로 상반된 정권과도 관계를 강화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결코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그와의 관계가 미래 한·미동맹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알았기에 참고 견뎌냈다.

 한국은 긴 역사 속에서 주변국들의 침략을 받아왔다. 20세기 들어서도 중국과 일본은 번갈아 가며 한국에 고통을 안겨줬다. 그러나 수백 년간 이어져온 한·중·일의 관계는 미국의 등장으로 극적으로 변화했다.

 첫 수십 년간 한·미 두 나라의 관계를 협력관계로 보기는 어렵다. 한국이 정치·경제적으로 성공한 국가가 되고, 한국제품이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는 지금까지도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을 전쟁과 연관시키는 까닭이다. ‘은자(隱者)의 왕국(Hermit Kingdom)’이던 한국은 과감하게 시장을 개방하고 국제사회에 뛰어들었다. 1980년대 후반 처음 한국 자동차가 미국 시장에 등장했을 때 일본 수입 자동차에 익숙한 많은 미국인들은 데자뷰를 느꼈다.

 하지만 무역이 한·미 관계를 이루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다. 노무현과 부시·이명박·오바마가 그랬듯 양국 정상의 관계가 두 나라를 가깝게 하는 더 큰 요인이 됐다. 앞으로 미국은 보다 많은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 정치인들의 해외순방에 대한 여론은 다소 회의적이다. 최근엔 오바마 대통령이 국내 문제 때문에 외국 방문을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대통령이 외국 방문을 하면 미국 언론들은 으레 수출계약 같은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한다.

 미국의 몇몇 대통령들은 외국 지도자들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지 부시가 다른 정상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두지 않았다면 걸프전 당시 연합군의 존재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이 다른 나라 정상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 것이 외교정책에 얼마나 효과를 가져올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 치 앞의 성과만을 바라고 국제관계를 이해하고 접근한다면 그간의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정상들이 얼굴을 맞대고 만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자리였다.

크리스토퍼 힐 덴버대학 조세프 코벨 국제대학 학장
정리=박소영 기자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