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새 300만원↑지하상가 ‘월세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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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동 영등포역 지하상가를 지나고 있다. 이 지하상가는 리모델링 후 지난 10월 재개장했으며 4600㎡ 면적에 80개 점포가 입점해 있다. [강정현 기자]

6일 서울 영등포역 지하상가. 약 18㎡(5.5평) 크기의 가게에서 가방을 파는 김정난(51·가명)씨는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한의원에 다닌다. 지난 5월부터 이곳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김씨는 “월세가 200만원이나 올랐는데, 손님은 줄어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곳 지하상가의 80개 점포는 지난달 리모델링을 하면서 월세가 최대 300만원까지 폭등했다. 김씨는 권리금 1억원, 보증금 1억원에 매달 850만원의 월세를 내고 있었다. 김씨는 “하루에 매출 60만원은 올려야 수지가 맞는데 30만원밖에 못 벌고 있다. 파산 직전”이라고 했다.

 최근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장한 강남역 지하상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점포 210여 곳의 월세가 지난 2~3개월 동안 최대 150만원까지 올랐다. 최근 강남역에 점포를 차리려다 포기한 박민기(48·가명)씨는 “메인 통로에 있는 약 40㎡(12평) 크기의 가게 월세가 2000만원이었다”며 “강변역 지하상가의 월세가 650만원인 것과 비교하면 너무 비싸 공정거래위에 제소할까 생각도 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주요 지하상가인 강남역·영등포역의 월세가 비정상적으로 폭등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두 곳은 2009년 서울시에서 민간 위탁을 맡긴 곳으로 각 지하상가의 실소유주들이 법인을 만들어 직접 관리하고 있다. 최근 상가 리모델링 비용도 서울시가 아닌 실소유주가 1억원씩 지불했다.

 실소유주들은 이 1억원만큼을 보상받기 위해 월세를 올렸다. 즉 가게 운영자들에게 고스란히 그 부담이 넘어온 것이다. 강남역 상인 김모(54·여)씨는 “주인들은 서울시에 월세 200만원만 내면 되는데 우리는 리모델링한 비용까지 떠안게 됐다”며 “벌써 수지가 맞지 않아 나가려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월세난의 근본 원인으로 “불법 재임대와 권리금 등 뿌리 깊은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원래 지하상가는 서울시시설관리공단·서울메트로·도시철도공사의 소유다. 이들이 싼 가격에 매물을 내놓으면 이를 입찰받은 사람이 직접 가게를 운영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하상가의 이권이 커지면서 입찰자가 비싼 월세를 주고 다시 임대를 내놓는 ‘불법 재임대’가 만연화된 것이다.

 비싼 권리금과 보증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에서 리모델링으로 월세까지 오르니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셈이다. 영등포역에서 남성 정장가게를 운영하는 김모(52)씨는 “중간에 부동산까지 끼어 가격 거품이 생기면서 서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는 민간 위탁을 맡긴 지하상가를 점점 늘려 가고 있어 월세난은 다른 지하상가까지 확대될 조짐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재임대는 엄연한 불법으로 공단에선 어떤 점포도 재임대를 허락해 주지 않는다”며 “자진신고기간, 세무조사를 통해 이 같은 불법 조건을 적발하려 꾸준히 노력했으나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임대는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하는 위험한 계약임을 상인들이 숙지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글=이지상·노진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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