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균돼지가 당뇨 완치 연구에 한몫했다니 보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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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80세가 넘은 노(老)학자는 눈물을 글썽였다. 지난 4일 서울대 의대 대강당에서 열린 연구발표회에서다. 이날 서울대 의대 박성회 교수는 돼지 췌도(膵島)를 당뇨병에 걸린 원숭이에게 이식한 결과를 발표했다.

 “돼지를 제공한 데 큰 보람을 느낀다”는 이는 미국 시카고의대 김윤범(82·사진) 명예교수. 면역학자인 그는 이종(異種)간 이식을 위해 췌도를 원숭이에게 내준 무균(無菌)돼지의 개발자다. 2006년부터 건국대 석좌교수로 일하며 한국과 미국을 수시로 오간다.

 그는 돼지의 태반이 두꺼워(6겹) 어미 돼지의 각종 면역세포가 태아 돼지에게 전달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무균 돼지를 만들어냈다. 이 돼지는 제왕절개를 통해 세상에 나오며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인큐베이터 같은 무균실에서 자란다. 무균실에 들어가려면 온 몸을 샤워해야 한다.

 그가 40여 년간 개발한 무균 돼지의 특징은 크기가 사람만한 미니어처(miniature) 돼지라는 것이다.

 “체중이 60∼70㎏으로 사람과 비슷하며 췌장·심장 등 장기의 크기는 물론 해부학·생리학적으로도 비슷해 장기이식용으로 가장 알맞아요.”

 이 무균 돼지에서 세포를 떼어내 인간면역유전자(hDAF)를 집어넣은 뒤 복제돼지를 만들면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할 수 있는 장기이식용 돼지가 된다.

 그는 무균 돼지를 여러 곳에 무상으로 분양했다.

 “미국 시카고의대에 200여 마리, 뉴욕의 슬로안케터링 암센터에 200∼300마리, 서울대 의대에 20여 마리, 건국대 의대에도 분양했어요. 항공기에 태워 보냈지요.”

 - 돼지의 세균·바이러스 등이 사람에게 옮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요. 지금까지 돼지로 인한 감염이 문제된 적이 없어요.”

 - 돼지 장기 이식의 윤리적인 문제는.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정신(soul)과 머리(brain)에 있어요. 몸 속의 한 장기를 받았다고 해서 ‘돼지같은 사람’이라고 본다면 넌센스죠.”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김윤범 명예교수=평양의대 2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지자 월남했다. 1958년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후 뉴욕 슬로안케터링 암센터·코넬대·시카고의대 등에서 면역학을 연구했다. 1973년 세계 최초로 무균 돼지의 생산·사육에 성공했다. 김 교수가 서울대에 제공한 무균 돼지로 박성회 교수가 당뇨 치료를 위한 췌도 이식 실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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