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중문화 3차 개방 영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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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발표된 일본대중문화 3차 개방 조치로 일본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밀려올 전망이다. 일본문화를 감상할 기회가 넓어져 좋기도 하지만 일본문화의 침투를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이번 개방조치는 문화다양성을 강화하고 국내 문화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영화.가요.방송 등 각 장르별로 일본대중문화가 미칠 영향과 대응 전략 등을 살펴본다.

◇ 애니메이션
TV용 비해 완성도 월등, 관련 부가산업계도 긴장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 부분개방(국제영화제 수상작에 한해 허용)은 문화계 전체에 메가톤급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포켓몬〉 〈드래곤볼〉등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일본 작품들이 이미 안방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TV시리즈보다 완성도가 한 차원 높은 극장판 작품은 초중고생은 물론 성인층까지 팬으로 끌어들일 '괴력' 을 발휘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

1997년 일본에서 1천3백여만 명을 동원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모노노케 히메〉를 비롯,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붉은 돼지〉 〈헤이세이 너구리전쟁 폼포코〉 〈인랑〉 같은 대작은 어떤 면에서는 세계 최고라는 디즈니 작품들을 능가한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의 김석기 회장은 "개방은 예정돼 있었던 만큼 흥행 가능성이 높은 작품은 이미 오래전에 계약이 끝난 상태" 라고 전했다.

특히 작품 자체의 흥행보다 인형, 신발, 액세서리, 팬시 등 각종 부가산업이 훨씬 더 큰 시장을 형성하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상 국내 문화산업 판도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가 지금까지 극장판 개방을 보류해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문화를 감상할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업계에서는 "일본애니메이션을 통해 애니메이션 붐이 일어나 국산 애니메이션 발전의 기폭제로 삼아야 한다" 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박세형 한국만화애니메이션학회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은 "좋은 자극은 되겠지만 워낙 양국간 차이가 커서 창작의욕이나 투자마인드 자체가 꺾일지도 모른다" 면서 "정부는 실제로 그림을 그리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 마련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다이너소어〉 〈판타지아 2000〉(이상 디즈니) 〈엘도라도〉(드림웍스) 〈타이탄A. E.〉(폭스)등 바 야흐로 '애니메이션 미.일 결전' 을 앞둔 시점에 발표된 일본 대중문화개방은 한국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 대중음악
비교적 평온…가수 일본 진출등 역공 모색

'부분 확대 개방' 을 예견하고 준비해온 가요.음반업계는 이번 개방조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미 구라모토 유키.사카모토 류이치 등의 연주음반이 국내 음악팬들에게 친숙해져 있고, 리 케이코 등의 재즈보컬 음반도 모두 소개된 마당에 영어나 제3국어 가창 등으로 개방의 폭을 조금 넓힌 것은 그리 큰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충격 완화' 를 고려한 점진적 개방조치란 분석이다.

소니뮤직의 일본음악 담당 이혁씨는 "일본음악이 단번에 전면개방되면 오히려 일본음악 자체에 대한 반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며 전면개방 유보를 반기는 입장을 보였다. 앨범 판매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공연을 개방한 것도 개방의 파장을 축소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음반이 판매되지 않는 상태에서 국내에서 큰 공연을 가질 스타들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따라서 일본 아티스트들이 단독 콘서트보다는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식으로 한국에서 인지도를 높여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한편 전면개방을 앞두고 한.일 음악업계가 저작권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음악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견해다.

포니캐년의 김주연씨는 "한.일 음악업계에서 저작권료 지급방식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며 "이번 개방을 계기로 이런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개방을 일본문화의 침투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한국 가요의 일본시장 진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일본음악전문가 이현재씨는 "일본 아티스트들의 음반을 판매하거나 공연을 유치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국내 가수들을 일본에 진출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 영화
경쟁력있는 작품들 많아 흥행싸움 불가피

'18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작품을 제외한 모든 일본 영화의 상영이 허용된 것은 어느 정도 예견된 개방 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일각에서는 전면 개방까지 예상하기도 했다.

정부는 1, 2차 개방에서 국제영화제 수상작과 '모든 연령 관람가' 작품을 허용한 이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일본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더욱 높아질 게 확실하다.

〈실락원〉같은 흥행작들이 여전히 묶이긴 하지만 '18세 미만 관람가' 영화 중에도 경쟁력 있는 일본 영화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사실 유명 국제영화제 수상작만 허용했던 지난해 상반기 일본 영화의 점유율은 0.7%에 불과했으나 2차 개방 이후 올 상반기엔 14.2%로 크게 뛰었다.

이번 확대 개방으로 당장 올 하반기에 국내 시장의 판도가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수입업자들이 개방에 대비해 확보해 둔 영화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한국영화는 할리우드 영화뿐 아니라 일본영화와도 흥행 싸움을 해야하는 힘겨운 상황이 됐다.

◇ 게임
게임기용은 대상서 제외-국내시장 영향 거의 없어

국내 게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게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플레이 스테이션' '닌텐도' '드림캐스트' 등 게임기용 비디오 게임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시장은 게임기용 비디오 게임이 아니라 PC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게임개발업체인 싸일리스의 손상욱씨는 "국내 게임 인구는 롤플레잉 위주의 일본 게임보다 '스타크래프트' 등 미국 등에서 제작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며 일본 게임물의 국내 시장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게임기용 비디오 게임에 대한 일본의 기술력은 세계적이지만, PC 게임에 대한 국내 산업의 경쟁력은 일본과 견줄 만하다.

한편 OEM(주문자 상표부착)방식에 의한 일본 게임물의 국내 제작과 다양한 방식의 산업적 제휴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게임업체인 E.A 코리아의 김승규씨는 "이번에 제외된 일본의 게임기용 비디오 게임은 국내 게임시장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폭발력이 있는 만큼 일본과 각종 제휴를 통해 이에 대한 기술력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 강조했다.

◇ 방송
국내 다큐멘터리 제작 큰 자극

문화관광부가 27일 발표한 일본대중문화 3차 개방안에 방송이 처음으로 포함됐다. 앞으로 매체 구분없이 스포츠.다큐멘터리.보도 프로그램의 방송이 가능하며 케이블TV 와 위성방송은 제한적이나마 영화 상영까지 할 수 있다.

이번 개방에 포함된 분야 중 어느 정도 국내 시장에 경쟁력이 있고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보이는 것은 다큐멘터리다. 일본 공영방송 NHK의 다큐멘터리 수준은 세계적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이런 프로그램들이 밀려들 경우 제작기반이 취약한 국내 독립제작사들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개방을 반기는 쪽도 있다. 독립제작사인 다큐서울의 정수웅 대표는 "방송 제작도 진작 자유경쟁 체제에 들어갔어야 하는 데 때늦은 감이 있다" 며 "개방을 계기로 그동안 미흡했던 국내 다큐 수준이 높아질 것" 으로 내다봤다.

다큐.교양 전문 케이블TV Q채널의 강신복 과장은 "프로그램의 수준을 떠나 각 방송사의 일본 다큐 편성비율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고 진단했다.

스포츠 프로의 개방 여파도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SBS 스포츠본부의 조재옥 총괄CP는 "국제 스포츠는 주로 각 경기 연맹 등 국제기구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일본 프로의 의존도는 약하다" 며 "단지 남미와 유럽 최강팀의 프로축구팀이 맞붙는 도요타컵 등 일본에서 돈을 대는 국제경기의 경우 비싼 방영료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고 말했다.

보도프로의 개방에 대해 방송위원회의 김성욱씨는 "민감한 국제문제에 관한 일본의 시각 등을 다양하게 전달함으로써 국내 방송사의 미국 편향적 시각을 교정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 으로 전망했다.

남북한 화해 분위기에 맞춰 일본에서 제작한 북한 관련 보도 프로의 활용도 개방의 이점으로 꼽았다.

한편 고려대 신문방송학과의 원우현 교수는 최근 발표한 '일본 대중문화 수입개방의 의미와 대응방안 연구' 논문에서 방송영상산업단지의 조성 등을 통한 인력과 소프트웨어의 공유, 소프트웨어의 유통 경로를 단순한 유통통합기구의 설립, 국내 우수 영상물의 세계화 전략 등을 대응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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