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된 서울고 수업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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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진·윤현태·유석현군(왼쪽부터)이 한 팀이 돼 연구했던 ‘양자점을 이용한 유방암세포 표지’라는 R&E 연구결과에 대해 이진승 부장교사가 마무리 검토를 해주고 있다.

2일 오전 11시30분, 서울고(서울 서초구)에선 ‘체험! 지진파 현장’이라는 1학년 과학교양수업이 한창이었다. 임경란 과학교사는 “절반은 복도로 이동하고, 나머지는 교실 안에서 해보자”라며 학생들과 분주하게 움직였다. 35명의 학생들이 절반씩 나눠 교실 안과 복도에 자리를 잡았다. 15명은 팔짱을 끼고 서로 어깨를 맞댈 정도로 밀착해 섰다. 지진의 진원지 역할을 맡은 한 학생이 팔짱을 끼고 선 학생들을 한쪽 방향으로 힘껏 밀었다. 학생들이 우르르 쓰러지면서 마지막 학생까지 넘어지자 기록 담당학생이 “1.72초”라고 외쳤다. 한 명이 진원지 역할을, 15명이 매질(파동 매개 물질)을, 나머지 한 명이 기록을 담당하며 몸을 이용해 지진파발생과정을 재연해냈다. 팔짱을 밀착해 끼는지, 느슨하게 끼고 서는지에 따라 매질의 상태를, 진원지 역할을 맡은 학생이 힘을 어떤 방향으로 주는지에 따라 P파와 S파를 표현했다. 실험이 끝난 뒤 조별 토론을 하며 각각의 실험 의미와 결과에 대해 확인했다. 김현우군은 “과학수업은 매번 이 수업처럼 작은 것 하나라도 실험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이 준비해 오신다”고 전했다. 이어 “이론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고 좋아했다.

R&E 수업으로 특화된 수학·과학 수업

 과학교양수업은 과학중점학교 공통교육과정으로 1학년 전원이 참가하는 특별교과수업이다. 과학과 생활·역사·수학·글로벌 이슈를 연계해 인문·사회교양과 융합한 과학지식을 가르치는 체험·실험수업이다. 임 교사는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된 후 블럭타임제(연속수업운영)로 2~3시간의 실험실습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며 “체험·실험을 강화한 수업”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고는 2009년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돼 현재 1학년 3학급, 2학년 2학급을 과학중점학급으로 운영 중이다. 1학년은 중점반·일반반 구분 없이 공통교육과정으로 특별교과(과학교양)수업과 과학·수학 체험활동을 60시간 이상 이수한다. 2, 3학년에 올라가면 과학중점학급을 중심으로 과학융합·과학사·실험수업과 같은 특별·전문교과를 공부한다.

 이런 과학중점학교 교육과정의 가장 큰 장점은 수학·과학 관련 체험·연구 프로젝트다. 서울고 이진승 과학정보부 부장교사는 “과학중점학교에선 입학사정관제처럼 변화된 대학입시에서 요구하는 진로·적성 계발활동을 다채롭게 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고에선 1학년 때 주제 중심의 소그룹 탐구 프로젝트에 전교생이 참여한다. 3~4명이 한 팀이 돼 4월부터 5개월 동안 담당교사와 공동연구를 한다. 2학년에 올라가면 R&E(Research&Education, 대학과 같은 외부기관과 연계해 진행하는 연구프로젝트)수업을 한다. 올해 12개 팀이 선정돼 서울대·중앙대·고려대와 같은 대학·연구기관을 찾아 지도교수와 함께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12월엔 자매결연을 한 일본 아키타현 내 고교생들과 합동 R&E 발표회도 갖는다. R&E 수업으로 진로·적성 계발은 물론 국제교류도 넓힌다는 계획이다. 이런 수학·과학 체험활동에 과학중점학급 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반 학생들도 지리·자연탐사, 대학탐방, 소그룹 탐구 프로젝트, R&E 수업과 같은 수학·과학 체험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일반반 학생으로 R&E 수업에 참여한 이승엽군은 “R&E 수업으로 과학에 대한 적성을 확인하고 진학계획을 빨리 세울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과학창의 재단 김기상 연구원은 “R&E 수업과 같은 체험·연구형 수업모델을 더 개발하고 확장할 예정”이라며 “수학·과학에 특화된 교육을 원하는 학생들은 관심을 갖고 지원해보라”고 권했다.

서울은 추첨, 경기 비평준화 지역은 선발과정 거쳐

 지난해 과학중점학교 경쟁률을 살펴보면 서울 지역 19개 과학중점학교 중 10개교의 지원경쟁률이 7대 1을 넘었다. 신도림고는 19.0대 1, 서울고는 18.9대 1을 기록했다.

 서울과 경기권은 과학중점학교 운영방식과 선발방법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울지역 과학중점학교는 입학 때부터 과학중점학급을 구분해 별도 선발한다. 학교별로 한 학급당 35명 내외로 2~4개 학급을 선발한다. 해당 학교의 나머지 입학생들은 일반반으로 배정된다. 후기고 지원원서에 과학중점학교를 체크한 뒤 지원학교를 기입하면 된다. 내신성적과 같은 제한은 없으며 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반면 경기도 지역 과학중점학교는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으로 선발방법이 구분된다. 평준화 지역은 추첨으로, 비평준화 지역은 중학교내신(100점)과 고입연합고사 성적(100점)을 합산해 선발한다. 경기교육청 과학직업교육과 정진호 장학사는 “경기도 내 과학중점학교가 설치되지 않은 학군의 학생들은 다른 지역의 과학중점학교에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과학중점학교는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교내 신청을 받아 과학중점학급을 구성한다.

과학중점학교란=자율형공립고·일반계고와 함께 후기고에 속한 고교로 수학·과학에 특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를 말한다. 현재 전국에 100곳이 있다. 한 학년에서 2~4개 학급을 과학중점학급으로 운영한다. 1학년은 공통교육과정으로 연간 60시간 이상 수학·과학체험활동과 특별교과Ⅰ(과학교양) 수업을 배운다. 2, 3학년에 올라가면 과학중점학급을 중심으로 융합과학·과학사·실험수업과 같은 수학·과학 특별·전문교과를 이수한다. 중점학급은 고교 총 이수단위 중 45% 이상이 수학·과학 교과로 구성된다.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 Ⅰ·Ⅱ8과목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

<정현진 기자 correctroad@joongang.co.kr 사진="최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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