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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고 상상하게 하고, 그걸 말할 수 있게 하는 게 내 몫”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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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호 08면

1 새 그림3(2008), Acrylic on Canvas, 100*80㎝

1980년대 격동과 혁명의 중국 현대사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지켜온 화가를 손꼽자면 바로 예융칭(葉永靑·YeYongqing)이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 현대미술이 압박된 슬픔, 분노의 저항 등과 같은 과격한 정치적 이슈들로 주목을 받아왔다면, 예융칭은 시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으로 일가(一家)를 이뤘다.
“나는 시, 서예, 그림을 하나로 표현하는 중국 전통의 문인화를 사랑합니다. 특히 북송시대 이래의 단순미를 좋아하는데, 이는 단순성에 우아함과 호사스러움을 결합한 것이지요. 이는 현대의 패션이나 스타일과는 다른 것이지만, 나는 여기서부터 나의 정신과 개인적 취향을 발전시켜왔습니다.”

진현미의 아티스트 인 차이나 <12·끝> 중국 화단의 음유시인 예융칭

작가의 자기 비유가 담긴 ‘새 시리즈’는 1999년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낯선 경험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사방 9㎜의 추상적인 격자무늬나 도넛무늬를 조합해 초사실주의적 초상화를 그리는 척 클로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외견상 단순한 묘사로 보이지만, 더욱 심오한 것을 추구하기 위해 반논리적으로 가장 복잡한 그리기 방법을 택한 것이죠.”

새 그림은 일필휘지의 거친 목탁 크로키 같기도 하고, 먹이 번진 수묵화 같기도, 또 단출한 낙서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단순한 그림은 실은 선을 그려 면을 만들고, 다시 면을 메워 선을 만들면서 완성된다. 일련의 과정 하나하나가 마치 수련하듯 고단한 노동집약적 작업의 산물인 것이다.
“새는 예술이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한 기호입니다. 중국 속설에 아무것도 아닌 걸 새로 표현하죠. ‘지금의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불확실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예술은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고, 무엇인가일 수도 있어요.”

얼마 전 작가는 중국 현대미술 역사상 유례없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베이징 한하이 경매회사를 통해 작가의 2001년작 ‘새’가 25만 위안(약 4383만원)에 팔렸다는 인터넷 뉴스에 1000만 번 이상의 조회 수가 나오고,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사람들은 1m 남짓한 사이즈에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단순한 그림이 엄청난 고가에 팔렸다는 데 흥분했다. 이 사건은 짧은 시간 안에 대중에게 현대미술 지식을 전파시켰고 다양한 견해와 전례 없는 논쟁을 낳았다.

2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한 예융칭 작가 3 스튜디오 풍경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코멘트엔 감사할 따름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어요. 제 생각에 사람들은 세 가지 이유로 흥분합니다. 첫째는 경매가인데, 작품 가격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작가가 가격을 정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다만 작가 입장에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당신이 예술작품에 투자하거나 수집할 때 당신이 사는 것은 종이나 캔버스의 색깔, 제작연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사는 것은 작가의 아이디어, 독특한 생각, 이 생각을 위한 모든 노력이라는 것이죠. 그 아이디어와 노력은 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림의 디테일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편견에 빠진 거라 생각해요. 자두가 시고 단지는 먹어봐야 압니다. 작품도 직접 경험해야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요. 세 번째는 2001년작 나의 새가 너무 멍청하고 바보 같았기 때문이에요. 많은 네티즌 눈에 그것은 예술작품으로 여기기 힘든 것이죠. 고정된 미학의 관념으로 볼 때 예술은 어떤 고상한 것인데, 단순하고 어린아이가 그린 듯한 새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것 같아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겁니다.”

이제 작가는 내년 상하이에서 열리는 다음 전시를 준비 중이다. “좋은 전시란 첫째 좋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 둘째 본 다음 상상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셋째 상상하고 생각한 것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내년 전시의 컨셉트는 ‘산을 보되 산이 아니다(看山不是山)’. 퍼즐조각처럼 4개의 조각을 한데 붙여야 완성되는 작품의 네 조각을 떼어 각각 하나의 작품으로 전시할 예정이다. 전시에서는 작품의 일면들만 보여주고, 온전한 작품은 전시도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완전한 작품의 일면만 띄엄띄엄 본 사람들은, 전시 컨셉트를 사전에 숙지하고 있다면 아마도 작품 전체를 상상하며 생각하겠죠. 아니면 작품의 일면만 보고 이것이 도대체 어떤 그림일까 하고 고민하든지요. 그리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각기 이해한 이 낯선 작품에 대해 설왕설래할 거예요. 또 한 차례 논란의 전시가 되겠는데요.” 베이징 아트미아 갤러리 진현미 대표의 설명이다.

작가는 조만간 고향인 윈난성으로 내려가 나머지 전시작들을 완성할 예정이다. 매년 겨울이 오면 따뜻한 남쪽 나라를 찾아 떠나는 철새(작품 속 새의 또 다른 자신의 비유인 듯!)처럼 그는 고향으로 내려간다. 겨울이 되면 베이징이 더욱 전쟁터같이 느껴진다며. 생각만 해도 마음이 온화해지는 아내 푸리야 곁으로.

◇예융칭=958년 윈난성 쿤밍 출생. 쓰촨미술학원에서 유화를 전공했다. 부모가 모두 당 간부로 중국 주류사회에서 성장했다. 문화대혁명 시절의 대자보와 당시의 상업 광고가 혼합된 형식의 회화성을 강조한 시적인 팝아트 ‘대벽보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 작가 대열에 합류했다.
◇진현미 대표=영어 이름 미아(Mia). 베이징 다산쯔 차오창디 예술특구에서 자신의 갤러리 ‘ARTMIA(아트미아)’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블루칩 작가들과의 만남을 중앙SUNDAY 매거진과 리빙 매거진 ‘레몬트리’에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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