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공적자금 투입은행 통합

중앙일보

입력

정부 주도로 강력히 추진하겠다던 한빛.조흥은행등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금융지주회사내 통합이 기업 자금경색과 노조의 반발에 부딪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이용근 금융감독위원장은 26일 기자간담회에서 금융지주회사제도를 통한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의 통합 방침엔 변함이 없지만 해당 은행이나 노조가 반발할 경우 강제로 추진하지않겠다고 밝혔다.

금융구조조정의 야전사령관인 이 위원장의 발언은 금융지주회사법의 국회 통과와 동시에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통합에 나서려던 당초 방침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다.

따라서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금융지주회사의 우산아래 들어가겠다고 나서지않는 한 정부 주도로 한빛.조흥.외환.서울은행 등을 지주회사 방식으로 통합하기는 쉽지않을 전망이다.

이 위원장은 설사 지주회사로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이 통합된다해도 이것이 합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당장 조직이나 인력 축소 등 노조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통합을 서두르지않기로 한 것은 최근 기업의 자금난에 은행들이 뒷짐을 지고 있는 현실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은 지주회사로의 통합이나 합병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려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게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에따라 대손충당금 부담이 높은 대기업 대출을 극도로 기피하고 있다.

◇후퇴한 정부 방침=정부는 당초 한빛.조흥은행 등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을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하는 방식으로 2차 은행구조조정의 불꽃을 당겨 금년내 은행의 합종연횡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서둘러 금융지주회사법안을 만들었고 이달중 임시국회에서 의결되는대로 공적자금 투입은행의 통합에 착수한다는 복안이었다.

정부는 사전 정지작업으로 이달초 경제장관회의까지 열어 지지부진한 금융구조조정을 앞당기기위해 공적자금이 투입된 은행들은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정부의 은행 통합 의지는 날이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지주회사를 통한 통합이 궁극적으로 합병을 지향하고 있고 이 경우 대규모 인력.조직감축을 우려한 은행 노조가 파업불사를 외치는 등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는데다 은행들이 중심을 잡지못해 기업자금난이 가중되고 있기때문이다.

이용근 위원장이 “정부가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지주회사로 통합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한 것은 사실이나 이에 반발하는 은행에 강요하지않을 것이며 해당 금융기관과 협의해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국제화 등을 추진하고 경쟁력을 높이기위해 자발적인 합병이 어렵다면 금융지주회사로의 통합이 시급하다며 제도마련을 강행했으나 주연배우(은행.노조)들의 반발과 상황논리에 밀려 주춤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은행 구조조정 연내마무리 난망=정부의 자세변화로 금융구조조정의 일정에 상당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정부는 예금보험공사나 국책은행이 대주주인 은행부터 먼저 묶어 우량은행간 합병을 유도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소유 은행들도 마음대로 못하는 정부의 합병 압박을 우량은행들이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이 금감위원장은 내년부터 시행되는 예금부분보장에 앞서 건전성이 떨어지는 은행의 자금이 우량 은행으로 이동하게 되면 스스로 금융지주회사의 우산 밑으로 들어오는 은행들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당장 내일 무너져도 합병은 못하겠다는 것이 국내 은행들의 입장이고 보면 이 위원장의 이같은 예상이 어느 정도 맞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주택.신한 등 우량은행의 경우 공자금이 투입된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급할 게 없는 상황에서 은행장들이 노조의 반발을 무릅쓰며 합병을 추진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따라서 금융계 안팎에서는 연내 금융구조조정 마무리가 물건너 간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는 공적자금 투입 은행들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경우 8월,9월쯤엔 지주회사로의 통합선언을 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희망사항'에 그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종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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