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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서 고위층 안다고 거들먹대단 사업 다 망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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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2006년 6월 28일, 당시 나이지리아 야당 대표였던 사로(Sahroh) 의원과 최승업(오른쪽) 대표가 사로의원 사무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최 대표는 2003년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를 제일 먼저 반긴 건 뜨겁고 메마른 바람이었다. 이글거리는 태양빛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1992년, 아프리카 가나는 멀리 한국에서 날아온 14세 소년을 이렇게 마중나왔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서른을 훌쩍 넘긴 최승업(34)씨가 최근 고국을 찾았다. 2일부터 사흘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10회 세계 한상(韓商)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번이 세 번째 대회 참가다. 그는 현지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로 꼽힌다. 임직원이 1000여 명에 달하는 통신업체 이토크&나나텔(E-Talk & Nanatel Limited)을 운영하며 연간 8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최 대표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도 아프리카 선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선교사인 부모님을 따라 가나로 갔다. 최 대표의 부모님이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러 가나에 간다”고 하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엔 노란 피부 때문에 놀림도 많이 받았다. 말도 안 통했다. 그를 현지인과 어울리게 한 건 다름 아닌 작은 공 하나였다. 최 대표는 “탁구를 잘해서 학교대회에서 1등을 하니까 그때부터 보는 눈이 달라졌다. 운동은 만국의 공용어인 것 같다”며 웃었다.

 최 대표는 “현지인들과 같이 어울리며 같은 언어와 생각을 공유한 게 사업의 성공요인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외국인 학교 대신 현지학교를 택했다. 대학도 가나 레곤국립대를 다녔다. 현지인들과 부대끼며 살기 위해서다. 덕분에 현지 문화도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됐고 가나의 변화 흐름도 일찍 포착할 수 있었다.

 그가 이동통신사업에 뛰어든 것은 2003년이다. 2000년대 들어 가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이동통신 보급도 빨라졌다. 최씨는 “특히 4년 전부터 이동통신 붐이 일어나면서 상상도 못 할 만큼 사업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 대표가 가나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신뢰’다. 그는 “처음엔 ‘GMT 시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고 말했다. “유럽에 GMT 시간대가 있는데 가나에서는 GMT를 ‘가나 메이비 타임(Ghana Maybe Time)’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가나 사람들과 시간약속을 하면 ‘아마(maybe) 몇 시쯤’이라 할 정도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약속을 하면 반드시 이행하니까 그쪽에서도 나를 인정해 주더라”며 웃었다.

 이토크&나나텔은 휴대전화 요금을 충전해서 쓸 수 있는 선불카드로 대박을 터트렸다. 우리나라는 전화 사용 후 요금을 내는 후불제지만 가나는 선불제다. 처음엔 시장에 카드를 뿌리고 돈을 다시 거둬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지 도(道)에서 사업권을 내주면서 대신 사용료를 거둬줬다.

  그는 “가나 전 국민의 70%가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며 “젊은 층들이 첨단제품에 관심이 많아 휴대전화 보급률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밖에서 보기에는 가나에서 그렇게 이동통신을 많이 이용하는지 의아할 수 있지만 전체 휴대전화 시장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성장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기다.

  미래 한상들에 대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아프리카가 ‘기회의 땅’이라고 하지만 대통령 측근을 안다는 식의 거만한 자세로 들어오면 현지에서 사업하자마자 다 깨진다”고 강조했다.

채승기·손국희 기자

아프리카 가나는

▶위치 : 아프리카 서부

▶인구 : 2400만 명 (2010년 기준)

▶1인당 GDP : 1312달러 (2010년 IMF 기준)

이토크&나나텔은

▶위치 : 가나 수도 아크라 소재

▶매출 : 연 800억원

▶직원 : 1000여명

▶설립연도 :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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