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유주열] 이세민(李世民)과 관음보살(觀音菩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당태종의 고구려 정복을 좌절시킨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중국의 역사서에 는 그 이름을 찾을 수 없다. 천개소문(泉蓋蘇文)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당고조의 이름 휘(諱)인 연(淵)을 피하기 위해 천개소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연(李淵)의 아들 태종의 이름은 이세민이다. 그가 황제가 되자 지명이며 인명에 세(世)자와 민(民)자를 모두 지우도록 칙령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세(世)는 대(代)로 민은 인(人)또는 호(戶)로 많이 고쳐 썼다고 한다. 왕조시대의 호부(戶部)는 본래 민부(民部)의 민(民)을 기피한 것이다.

불교에는 세상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보살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있다. 황제의 칙령에 의해 관세음의 세(世)를 생략하여 관음(觀音)보살로 표기하게 되었다. 지금도 불교권에서는 관세음보살 대신에 관음보살이 많이 쓰이고 있다. 항해와 관련되는 관세음 신앙을 깊히 믿어 온 고대 일본에서는 관세음대신에 관음보살로 표기해 왔다. 세계적인 카메라의 상표인 “캐논” 카메라의 “캐논”이 관음의 일본어 발음 “간논”에서 유래된 것도 회사 설립자의 독실한 관음신앙과 관련된다.

베이징의 명소 자금성을 관람할 때 정문의 오문(午門)으로 들어가서 떠날 때는 신무문(神武門)을 통해 나오게 된다. 명(明)의 영락황제가 건축한 자금성을 만주족인 청조(淸朝)도 그대로 사용하면서 주요 전각을 빼고 대부분의 건물의 이름이 명조(明朝)와 마찬가지로 사용되었다. 뱀을 칭칭 감은 다리가 긴 거북이 모양의 현무(玄武)는 북쪽 방향을 나타내는 사신(四神)의 하나이다.

그러나 강희황제부터는 현무문이 신무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강희황제의 이름이 애신각라(愛新覺羅) 현엽(玄燁)이기 때문이다. 황제의 이름인 현(玄)을 기피한 것이다. 서울의 경복궁 북문도 천정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으나 문(門)의 현판은 현무문이 아니고 신무문이다.

강희의 아들인 옹정(雍正)황제는 자신의 이름이 함부로 쓰이거나 불려지는 것에 대해 더욱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였다. 이른 바 문자옥(文字獄)이라 하여 필화(筆禍)를 엄하게 다스렸다. 당시 “유민소지(維民所止)”라는 시경(詩經)의 일절이 과거(科擧)시험에 출제되었는데 “유지(維止)”는 시각적으로 雍正 두글자의 윗부분을 잘라낸 것으로 보이면서 “민소(民所)”에 가로 막혀 떨어져 있다. 이는 옹정황제의 머리를 잘라 분리시킨 것으로 해석되어 출제자 일족이 처형되기도 하였다.

건륭(乾隆)황제는 이름이 홍력(弘曆)으로 弘자를 피하기 위해 당시 중국 사람들은 홍과 같은 발음이지만 글자가 틀린 굉(宏)을 널리 사용하였다. 조선조 말기 친일 내각을 만든 김홍집(金弘集) 총리대신도 젊은 시절 김홍집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성(姓)씨인 구(邱)씨의 경우에도 본래 丘였으나 공자의 이름(孔丘)을 피하기 위해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의 대구(大邱)직할시도 이러한 피휘의 유산과 관련없기를 바란다.

황제나 조상의 이름자를 함부로 쓰지 못하게 하는 피휘제도는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 사는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많이 남아 있다. 불필요하게 피휘하다 보면 당초의 뜻과 관계없는 글자를 쓰게된다. 이것도 역사의 유산일 수 있지만 불편한 진실을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