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배추값 1년새 -65.4% … 3%대 물가의 진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한 포기 1980원(왼쪽). 1일 한 대형마트의 배추값이다.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지만 한 포기에 1만원을 훌쩍 넘던 지난해 이맘때 시세(오른쪽)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기저효과 덕에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0개월 만에 3%대에 진입했다. [변선구 기자]

충북 청주시 개신동에 사는 주부 이영순(66)씨는 최근 시장에 배추를 사러 갔다 네 포기만 사왔다. “배추값이 많이 내렸다더니 그리 싸지도 않네….” 속이 꽉 찬 배추는 한 포기가 2000원대 후반. 이씨는 “한 포기에 1만원 하던 지난해에 비하면야 싸지만, 원래 배추값하고 비교하면 오른 편”이라고 말했다.

이씨의 말을 확인해봤다. 1일 가락시장에서 경매된 특품 배추는 10㎏에 3403원. 지난해 같은 날(8270원)보다 60% 정도 내렸지만 2009년(3078원)이나 2008년(2700원)과 비교하면 10% 이상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지난달 물가 통계에서 배추값은 전년 같은 달보다 65.4%나 내렸다고 잡혔다. 비교 시점의 가격이 워낙 높아 지금 가격이 상대적으로 싸 보이는 전형적인 기저효과(基底效果)다.

 10월 소비자물가가 기저효과 덕을 톡톡히 봤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9% 상승했으며, 전달보다 0.2% 하락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를 기록한 건 지난해 12월(3.5%) 이후 10개월 만이다. 올해 들어선 매달 4%대 상승을 지속하다 8월 들어선 5.3%를 기록하기도 했다.

 ‘3%대 상승’의 일등 공신은 채소다. 농산물 가격은 지난해보다 5.3% 내렸다. 특히 배추(-65.4%)와 파(-62.3%)·무(-62.5%)·마늘(-18.3%) 값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9월 이후 기상 조건이 좋아진 데다 배추·무 등 김장 채소의 재배 면적이 늘어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거기다 지난해 10월에 배추·무·파 가격이 워낙 많이 올랐던 덕도 봤다. 통계청 양동희 물가동향과장은 “지난달 채소 값은 9월과 비교해도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어 하락세에 접어든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KT가 이동통신전화료의 기본 요금을 1000원 내린 것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동전화 통화료(-4.0%)와 이동전화 데이터통화료(-5.1%)가 눈에 띄게 내린 것이다. 하지만 석유 제품(휘발유 16.3%)과 금반지(29.1%), 전세(5.6%)와 도시가스 요금(9.7%) 등이 큰 폭으로 오르며 물가 하락세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분석이다. 고춧가루(101.0%)와 소금(55.8%), 쌀(17.7%) 값이 오르고 있는 것도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모처럼의 3%대 물가 상승률에도 정부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당장 11월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달엔 공공요금 인상과 수입 물가 상승에 기저효과라는 세 가지 복병이 겹쳐 있다. 우선 이달 중으로 인천·경기 지역의 시내버스 요금이 11.1% 오른다. 이달 말엔 5년간 동결됐던 고속도로 일반 통행료도 2.9% 인상된다. 또 4년 동안 묶여 있던 KTX 철도 운임도 3.3% 인상될 예정이다. 글로벌 재정위기 이후 들썩인 환율 때문에 수입 물가도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전년 동월 대비 9.8%였던 수입물가상승률은 8월에 10.0%, 9월 14.0%로 급등했다.

 가공식품에 대한 물가 상승 압력도 심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졌던 농산물 가격 상승 때문이다. 한국코카콜라는 1일 일반 소매점의 콜라·사이다 제품의 가격을 6~9% 인상하기도 했다. 최근 우유 가격이 줄줄이 오른 것도 분유·제빵·제과류 등에 인상 압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달엔 기저효과마저 불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은 갑자기 물가가 안정된 달이었다. 지난해 10월 4.1%였던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갑자기 3.3%로 내려앉았었다. 기획재정부 이용재 물가정책과장은 “정부가 할당 관세 등의 혜택을 주며 가공 식품 가격 상승을 억제해왔는데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 많다”며 “이외에도 수입물가,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11월 물가는 다시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글=임미진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기저효과(基底效果·Base Effect)=어떤 결과를 비교할 때 기준이 되는 시점과 당시의 특수성에 따라 결과가 왜곡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경제 상황을 호황기와 비교하면 위축된 것처럼 나타나고, 불황기와 비교하면 부풀려져 나타나는 것이 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