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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해명 안 한 부분 있어 … 검찰은 유죄 입증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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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명숙 전 총리(가운데)가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며 손을 흔들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왼쪽)와 강금실 전 장관(오른쪽)도 축하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김우진)는 31일 9억여원의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미화 환전 기록 등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9억원의 비자금을 마련한 증거일 뿐 그 돈을 한 전 총리가 받았다는 증거는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들었다는 증언 등은 ‘전문(傳聞·전해 들은 이야기) 진술’로 증거 능력이 없다”며 “한 전 총리의 계좌에 출처 불명의 현금이 있다고 해서 한 전 대표로부터 받은 돈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 전 총리의 비서 김문숙(51·여)씨에 대해선 5500만원과 법인카드를 받아 쓰고 버스와 승용차를 무상 제공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가 인정된다며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9400여만원을 선고했다. 다음은 재판장인 김우진 부장판사가 선고 뒤 일부 취재진과 가진 일문일답.

 -한 전 총리에 대한 판결 이유는.

 “한 전 총리 측이 확실히 해명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검찰이 유죄를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파장이 예상된다.

 “판결은 판결일 뿐 다른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길 바란다.”

 김 부장판사가 한 전 총리 측의 해명 문제를 지적한 것은 한 전 총리가 5만 달러 뇌물 수수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재판 과정 내내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과 관련돼 있다. 한 전 총리는 검찰 측 신문에 응하지 않았고 변호인 측 신문은 아예 하지 않았다. 이번 9억원 사건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 김형두)가 무죄 판결을 내린 5만 달러 사건과 판결 이유가 사실상 같다. 두 재판부가 똑같이 “유죄라고 믿을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두 재판부는 핵심 증거인 ‘돈을 준 사람’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봤다. ▶진술이 자꾸 바뀌고 ▶진술한 내용과 객관적인 증거가 부합되지 않으며 ▶추가 기소를 피하려는 등 허위 진술을 할 만한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 ‘표적 수사’ 비판에 “법원 주관적 판단”=이날 한 전 총리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충격에 빠졌다. 판결 직후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은 긴급 회의를 했지만 오후 4시쯤 “법원의 판단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항소할 방침이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놓았다. 오후 7시가 넘어서야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원 수표를 사용하는 등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고 법원이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을 했다”고 반박했다.

 법조계에선 “검찰이 자초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다. 검찰은 한 전 총리를 두 차례나 수사했다. 2009년 12월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서 미화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지난해 7월엔 한만호 전 대표로부터 현금과 달러 등 9억여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각각 기소했다.

 하지만 ‘9억원 불법 정치자금 사건’마저 무죄가 선고됨으로써 검찰은 ‘진술에 의존한 부실 수사’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정치적 표적 수사’라는 야권의 공세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 착수 시점은 ‘표적 수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5만 달러 뇌물 사건 수사는 한 전 총리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컸던 2009년 12월 시작됐고 곽 전 사장에 대한 1심 선고 하루 전날(지난해 4월 8일) 한신건영을 압수수색했다.

글=박진석·구희령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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