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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선동 바이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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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어디까지나 선택이다. 정의(正義)나 진리 같은 절대적 존재가 아니다. 공동체가 다수(多數) 결정으로 승리자에게 필요한 권력을 주는 것뿐이다. 당선자는 부여받은 권력으로 공동체에 봉사한다. 그러고는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는다.

 이것이 선거의 계약이다. 공동체나 당선자나 이런 계약에 충실해야 한다. 당선자는 승리했다고 이런 계약을 무시하고 정의를 이룬 것처럼 흥분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도 당선자에게 찬사를 헌납하거나 면죄부를 주어선 안 된다. 당선자나 유권자나 투표 전에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후보들이 공동체에 빚을 남겨놓은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클린턴은 1992년 선거에서 이겨 대통령이 됐지만 화이트 워터 부동산 스캔들에 시달려야 했다. 특별검사의 조사까지 받았다. 이명박(MB)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고 한국인이 위장전입과 BBK를 잊지는 않았다. 한국인은 MB에게 끊임없이 도덕성을 요구했다. 서울시민도 5대 의혹을 기억하면서 박원순에게 올바른 시장이 될 것을 주문해야 한다. 5대 의혹은 안보관·병역·학력·모금협찬 그리고 불법 낙선운동이다. 박원순은 ‘훌륭한 시장’으로 공동체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

 선거 결과에 잘못된 환상을 가지는 이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안철수 교수다. 그는 상식이 비(非)상식을 이긴 것이라고 했다. 과학자는 환상에서 가장 멀고 사실(fact)에 가장 가까워야 한다. 안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 과학자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멘토(mentor)이며 지지율로만 보면 박근혜급 지도자다. 그런 사람이 상식과 비상식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고 흑백의 파열음을 내고 있다.

 박원순은 상식이고 나경원은 비상식인 게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상식과 비상식이 섞여 있는 것이다. 나경원이 비상식이라면 그를 찍은 46%도 비상식인가. 두 배나 더 나경원을 찍은 50, 60대도 비상식인가. 젊은 세대는 상식이고 중견·원로는 비상식이라면 한국은 물구나무 사회인가. 박원순은 자신의 안보관이 투철하다고 했다. 그가 만든 참여연대의 운동가들은 천안함 폭침의 북한 소행을 믿을 수 없다며 유엔에 편지를 보냈다. 국제사회가 살인자를 규탄하려는데 정작 피해자들이 반대한 것이다. 안보관이 투철하다면 박원순은 그런 후배들을 말렸어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박원순은 이승만 건국정권을 친일파라고 매도했다. 그렇다면 최소한 도요타 자동차의 기부금만큼은 사양했어야 했다. 그게 상식이다.

 출마 얘기가 한창일 때 안철수는 한겨레신문 인터뷰에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라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을 엄히 문책하면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북한 어뢰가 나왔는데도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며 북한을 감싸고 있다. 누가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가. 이명박 정권은 한·미 FTA로 일자리를 창출하려 한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극렬하게 반대하며 일자리를 막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게 누구인가.

 안 교수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와 국가정보화 전략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대통령의 역사관에 동의하지 않으면 맡기 힘든 자리다. 대통령을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세력’이라고 비판하려면 먼저 대통령 직속에서 나와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국민 앞에 대놓고 ‘역사의 흐름’ 운운하려면 깊은 역사·정치 지식과 사회과학적 경험이 필요하다. 안 교수는 “인문학은 알지만 정치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렇다면 섣불리 역사를 재단(裁斷)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상식이다.

 정작 비상식에서 헤엄치고 있는 이는 안철수 자신이다. 그런데도 그는 엉뚱한 이들을 비상식이라고 몰아붙이며 사회를 흑백으로 나누려 한다. 이런 일은 과학자가 아니라 선동가가 하는 것이다. 그는 정치를 시작하면서 선동부터 배웠나. 안 교수는 선거 전에는 ‘이중성 바이러스’를 보여주었다. 선거 후에는 “상대방은 비상식”이라는 ‘선동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컴퓨터 바이러스 전문가가 자신의 바이러스는 고치질 못하고 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