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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 중개로 파워맨들 밤 지배 … 미국인 “공공의 적 9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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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서유럽 유대인은 대체로 전문직에 많이 종사한다. 의사·변호사·교수·기자·회계사·주식 애널리스트·펀드매니저 등 주로 두뇌를 쓰는 직종이다. 과거 유럽에서 박해받던 유대인들에겐 농지 또는 대단위 산업 생산시설 소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가 어디서나 쉽게 자리를 잡으려면 머리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지식만이 무기였다는 것이다. 얼핏 듣기엔 그럴듯한 설명이다. 그런데 유대인을 잘 관찰해 보면 이들은 체력이 수반되는 고유한 의미의 노동보다는 머리 쓰는 일에 더 강점을 보인다.

유대인이 모두 버젓한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극소수는 직업이라고 말하기도 적절치 못한 업종에 종사한다. 풍요로운 현대사회의 그늘에서 제한적인 고객층을 위해 은밀한 사업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다. 독일계 미국 유대인 여성 하이디 플라이스(사진)는 일명 ‘할리우드 마담’으로 불린 매춘 알선업자로 한동안 많은 화제를 뿌렸다.

부친은 의사, 큐레이터 꿈꾸다 ‘돌변’
플라이스는 1965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소아과 의사 아버지를 둔 다자녀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어린 시절 꿈은 큐레이터였지만 공부엔 취미가 없어 전문대를 중퇴했다. 많은 유대인 청소년들과 같이 그녀도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자립하려고 식당 웨이트리스로 잠시 일하다 수입이 시원치 않자 이 일을 그만두었다.

22세가 되던 87년 그녀는 우연한 기회에 필리핀계 미국인 마담 앨릭스를 만났다. 부유층과 사회 명사를 대상으로 고급 매춘망을 운영하던 여성이었다. 그녀의 권유로 플라이스는 콜걸로 변신해 잠시 이 바닥 현장 종사원으로 뛰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신의 용모 그리고 자질과 적성 모두 콜걸로서는 그다지 경쟁력이 없음을 깨닫고 이 일을 접었다. 대신 사업에 눈을 떴다. 비즈니스가 그녀의 특기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잠시 마담 앨릭스와 동업하다 결별한 플라이스는 90년 자신의 매춘 알선업을 시작했다. 수표는 사절하고 현금만 받았다. 수표를 건네준 후 곧바로 지불 정지시키는 얌체족들이 간혹 있었기 때문이다. 전성기 때 그녀가 관리하던 여성은 70여 명에 이르렀다. 한때 하루 최고 9만 달러(약 1억원)의 커미션 수입을 올렸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의회·법조계 인사, 의사·유명 배우·아랍의 석유 부호 등이 주 고객이었다. 그녀는 다른 동종 업주와 달리 여성들의 수입을 과도하게 뜯지는 않았다고 한다.

플라이스는 철통 보안을 자신했지만 이런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LA 경찰 풍속반은 그녀의 동태를 한동안 관찰하다 수사에 착수했다. 93년 경찰은 탈세·돈세탁·매춘 알선 등의 혐의로 그녀를 체포했다. 플라이스는 주법원 재판 중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다. 그러다가 97년 탈세죄로 다시 연방법원 재판에 회부돼 37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매춘 알선죄는 기소유예 처분됐다. 21개월 복역하고 99년 출옥했다. 모범적 수형 태도가 감안된 형기 단축이었다.

플라이스는 출옥 후에도 계속 화제를 몰고 다녔다. 2001년 4월엔 마약류 복용 혐의로 6개월간 가택연금 명령을 받았다. 2003년에는 당시 동거남인 배우 톰 시즈모어(영화 ‘진주만’ 등에 출연)가 자신을 폭행했다고 고발했다. 플라이스는 CNN의 래리 킹 라이브를 비롯한 언론 인터뷰와 기고 등으로 다시 유명인사가 됐다. 그녀의 언론 접촉으로 지난날 거물 고객들은 전전긍긍했다. 몇몇 황색 언론 매체는 많은 대가를 미끼로 그녀의 단골 고객 명단이 적힌 ‘조그만 검은 수첩’의 공개를 집요하게 졸라댔다. 하지만 플라이스는 직업 윤리를 이유로 이들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영화배우 찰리 쉰이 그녀의 단골 고객이었다고 스캔들 매체에 보도됐지만 이는 그녀가 폭로한 것이 아니다. 이런 문제에 과거 여러 차례 전력이 있었던 쉰을 파파라치들이 쫓아다니다 건진 소득이었다. 다만 그녀는 40세나 나이차가 있는 명배우 말런 브랜도(2004년 사망)와는 97년 고객이 아닌 스쳐가는 연인으로 정사를 벌인 적이 있었다고 밝혔다. 2004년엔 플라이스의 행적을 담은 ‘내게 전화하세요: 하이디 플라이스의 부침’이란 TV극이 방영됐다.

명사들 위선 지적, 이중적 모습 보여
플라이스와 관련된 화제는 끊이지 않았다. 2005년 1월엔 네바다주에 남성 접대부를 고용한 여성전용 매춘업소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업소명은 ‘플라이스의 종마 사육장’이었다. 양성 평등을 명분으로 들었다. 사회적으론 성공하고 경제력도 있지만 욕구 불만을 느끼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한다는 것이다. 네바다주 10개 카운티에선 매춘이 합법이다. 다만 전과자의 업체 설립은 불법이다. 그래서 플라이스는 마땅한 동업자를 찾다가 여의치 않자 이 사업을 접고 대신 동전투입 세탁소를 차렸다.

플라이스는 술과 마약으로 찌든 세월을 보냈다. 재활교육도 몇 차례 받았다. 2011년 8월 미국의 한 인터넷 여론조사는 ‘미국인이 미워하는 공적 10인’ 리스트에 그녀를 패리스 힐턴 바로 다음 순위인 9위에 올렸다.

그녀는 매춘을 ‘성인 간 합의된 사회적 관계’로 정의했다. 그리고 소수 사회 명사들의 위선적 행태도 지적했다.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가 낮엔 매춘 등 사회악 퇴치와 도덕 재무장를 부르짖다가 밤엔 그녀의 주선으로 콜걸과 어울리면서 보통 부부 사이엔 합의하기 어려운 각종 변태 성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행위가 위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다고 플라이스 같은 사람이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정당성을 얻기는 어렵다.

명지대 객원교수·전 외교부 대사 jayson-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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