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손병수의 희망이야기

1%의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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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손병수
논설의원

‘1%의 희망이 99%의 절망을 이겨낸다. 모든 것은 단 1%가 해낸다. 길이 없다고 말하지 말라. 길이 끝나는 곳에서 늘 새로운 길이 시작된다’. 산악인 엄홍길이 쓴 ‘오직 희망만을 말하라’ 가운데 일부입니다. 그 1%의 희망이 지금 히말라야 고봉 안나푸르나에 걸려 있습니다. 지난 18일 이후 실종 상태인 박영석 대장 일행의 생환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그 가냘픈 가능성을 부여잡고 있습니다. 벌써 열흘째, 한국의 국가대표급 산악인들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몇 가닥 로프에 매달려 눈과 얼음의 틈새를 뒤지고 있습니다.

 박영석이 누구입니까. 엄홍길과 함께 등산 강국 코리아를 대표하는 산악인이요, 탐험가입니다. 히말라야를 뒷산 드나들듯 정복하고도 성에 안 차 남·북극을 포함한 극지와 험산을 모조리 넘어선 영웅입니다. 엄홍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계의 고봉들을 점령해 가는 동안 우리는 행복했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뉴욕에서 일하던 지난해 8월, 사무실로 찾아온 박 대장을 만났습니다. 탐험활동 지원은 물론 청소년 교육·장애우 지원 등을 위해 설립한 박영석 탐험문화재단을 미국 동포사회에 알리기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건장한 모습에 불그레한 얼굴, 투박한 손이 과연 영웅의 풍모였습니다. 그에게 소박하게 물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위험하지 않냐고. “힘들고 위험하지 않은 도전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되물은 그가 덧붙인 한마디가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세상에 주인은 따로 없습니다. 도전하는 자가 주인이지요.”

 박영석과 엄홍길의 화법이나 경험에는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박 대장은 2003년 북극 탐험 중에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2년 후 그는 이 1%의 가능성을 파고들어 스스로 ‘이 세상의 지옥’이라고 부른 북극점 주파에 성공했습니다. 엄홍길 역시 안나푸르나에서 산악 인생 최대의 위기를 넘겼습니다. 1998년 등반 시 7800m 지점에서 오른 발목이 골절된 그는 팔꿈치와 무릎으로 눈바닥을 기어서 기어코 살아 돌아왔습니다. 살겠다는 1%의 희망으로 99%의 절망을 이겨낸 것입니다.

 박 대장의 생환을 기다리며 1년 전 칠레의 광산사고를 생각합니다. 33명의 광부가 지하 700m 갱도에서 70여 일을 버텨 마침내 살아왔을 때 미국 신문에 인용된 신학자 조지 스위팅(George Sweeting)의 글을 기억합니다. ‘인간은 40일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 3일간 물을 마시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며, 8분간 숨을 쉬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희망 없이는 단 2초도 살 수 없다’. 살아난 칠레 광부들의 인생이 달라진 것은 다음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 그들을 살렸다는 점이지요.

 지금 안나푸르나의 어둠 속에 갇혀 있는 박 대장 일행 역시 희망을 굳게 부여잡고 있을 것입니다. 구조대원들은 물론이요, 재·보선 와중에도 애타게 그들의 생환 소식을 기다려 온 국민들 역시 간절한 기도를 멈출 수 없습니다. 1%의 희망, 1%의 가능성을 위해.

손병수 논설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