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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 통일의 힘'은 일관된 정책

중앙일보

입력

남.북한 두 정상이 반세기만에 손을 맞잡았다. 첫 정상회담의 타이틀은 김대중 대통령이 차지했고, 이제 누가 통일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인지가 관심사다. 어떤 비전과 정책을 가진 인물이 통일을 이룩한 지도자로 기록될지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통일을 이룬 독일 총리들〉(귀도 크놉 지음.안병억 옮김.한울)은 이런 상황에서 눈여겨 볼만한 책이다. 불과 10년 전만해도 동과 서로 나뉘어 있던 독일이 어떻게 통일을 이뤄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통일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던져주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신문을 거쳐 현재 독일 공영방송 ZDF에 재직중인 역사학 박사 귀도 크놉이 쓴 이 책은 초대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에서부터 통일 총리인 헬무트 콜에 이르기까지 50년간 독일을 이끈 6명의 총리를 중심으로 한 독일 전후사를 다루고 있다.

개개인의 사적인 일대기와 권력을 쟁취하는 방식, 미묘한 정치문제 등도 흥미롭게 묘사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통일이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다.

크놉은 이 책에서 통일이 한 순간 혹은 어느 한 총리의 업적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4대 총리 빌리 브란트는 동방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콜은 통일이라는 열매를 땄지만 이들의 된뒤에 존재한 다른 총리들의 통일 의지와 일관한 정책 없이는 지금의 영광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마다 통일에 얽힌 논쟁은 계속 있어 왔고, 때로는 전임 총리와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 독일을 이끌어갔지만 이들 6명 총리의 통일정책은 모두 논리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시사평론가 오하네스 그로스의 "아데나워가 독일연방공화국의 아버지였다면 루드비히 에르하르트(2대 총리)는 양육자였다. 브란트가 구세주가 되고자 했다면 헬무트 슈미트(5대 총리)는 보호자였다. 콜은 전임자의 정책을 계승, 다시 아데나워로 돌아왔다" 는 말을 통해 이런 점을 분명히 한다.

콜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전임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수용했다는 말이다. 통독을 제안하는 소련의 스탈린각서를 거부해 '통일 기회를 놓쳤다' 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힘을 키워 통일한다는 아데나워의 정책을 계승했으며, 브란트의 긴장완화 정책을 받아들여 동.서독의 인간적인 고통을 완화하는 정책을 실시했고, 슈미트 총리가 시작한 나토의 이중결정(독일에 미국 미사일을 배치하면서 소련과 군축협상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행동에 옮겨 결국 소련이 군축협상에 나서게 했다.

총리 개개인의 면모를 살펴보면 아데나워는 수백년 분열 끝에 독일 제국을 세운 비스마르크를 연상시킨다. 본인은 '비스마르크의 장화가 내게 너무 크다' 고 했지만 윈스턴 처칠도 아데나워를 비스마르크 이후 가장 중요한 독일 정치가로 꼽을 정도였다.

아데나워는 폐허를 딛고 민주주의 국가를 건국했을 뿐만 아니라 친서방정책을 실시해 독일을 국제사회의 일원에 합류시켰다. 중립을 요구하는 소련의 통독제안서인 스탈린각서를 거부한 것도 이런 외교적 맥락과 일치한다.

분단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독에 자유를 안겨준 사람이 아데나워라면 시장경제 도입을 밀어부친 '경제기적의 아버지' 에르하르트는 아데나워의 정책에 경제적인 안전장치를 제공한 인물이다.

하지만 아데나워가 26번이나 파리를 방문하며 쌓은 신뢰를 미국만 중시하는 외교정책 때문에 망가뜨리기도 했다.

독일 건국 후 첫 사민당 출신 총리로 20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룩한 브란트는 키징거(3대)가 도입한 동방정책을 지속해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고 대화노력을 계속했다. 70년 동독을 방문해 최초의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졌고 72년 양국간 기본조약을 이끌어냈다.

이런 동방정책은 독일을 서유럽 국가가 아닌 유럽 국가로 외교지평을 확대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분단 고착화로 비난받았다.

이 책은 ZDF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를 중심으로 쓴 것이라 마치 TV를 보듯 감각적인 글쓰기가 여느 역사책과는 다른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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