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김선욱 총장 “이대엔 과학의 피 흘러 … 노벨 과학상 1호 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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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캠퍼스의 가을은 젊었다. 교문에 들어서자 시원하게 뻗은 계곡형 건물 사이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유명 건축가인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세계 최대 규모의 지하캠퍼스 ECC(Ehwa Campus Complex)다. 2008년 연면적 6만6000여㎡에 6층 건물로 개관한 ECC는 이대 변신의 상징이다. 강의실과 세미나실에서는 학생들의 토론이 한창이었다. 김선욱(59) 총장은 “125년 역사의 이대는 끊임없이 변신 중이며 이공계 교육에서 미래를 찾겠다”며 “한국 최초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4일 총장 집무실에서 진행됐다.

-캠퍼스에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외부에서는 이대가 조용해 위기라는 말도 나온다.

 “그렇지 않다. 그동안 등록금, 파주캠퍼스, 감사원 감사 등 여러 문제가 있었으나 내실을 기하느라 분주하게 지냈다. 이화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1946년 한국 최초의 4년제 대학 공식 인가를 받은 이대는 의대·공대·로스쿨 등 여자대학으로서 모든 것을 갖췄다. 대학의 미래를 과학에서 찾으려고 한다. 노벨 과학상 1호를 우리가 낼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겠다는 구상이 생소하다.

 “나는 법학자지만 총장이 된 후에는 과학 쪽에 쓰는 시간이 훨씬 많다. 이화가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면서 교육할 수 있으려면 대학의 이공계 연구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 학생과 교수가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얻으면 대학은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다. 과학은 인류에 기여하지만 큰 꿈을 이룰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는 세계적인 벨기에 화학기업인 솔베이(Solvay)에서 얻었다.”

 이대는 올해 5월 세계 5대 화학업체인 솔베이의 글로벌 연구개발(R&D)본부를 유치했다. 세계 다국적기업이 국내 대학과 공동으로 R&D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은 처음이다. 솔베이는 이대에 2013년까지 2150만 달러(약 280억원)를 투자해 산학협력동 건축과 장학금, 연구인프라 등을 지원한다. 김 총장은 “솔베이와 우리가 ‘제2의 마담 퀴리를 키우자’는 데 공감했다”고 했다.

 -글로벌 산학협력만으로 노벨 과학상이 나올까.

 “3년간 연구비 100억원을 투자하는 ‘이화 글로벌 톱5’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대학이 교비에서 100억원을 연구에 투자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글로벌 연구역량을 높이겠다는 의지다.”

 -톱5는 어느 부문에 집중하는가.

 “나노·바이오·화학·에너지·녹색성장 분야를 생각 중이다. (집무실 책상 위의 솔베이 태양에너지 비행기 모형을 가리키며) 글로벌 산학협력의 모델을 제시하겠다. 이화에는 ‘과학’의 피가 흐르고 있다.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도 이화인이고, 바이오·나노 융합 분야를 처음 연구한 대학이기도 하다.”

 -노벨 과학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뭘까.

 “새 개념과 분야에 대한 연구, 이를 통한 사회적 기여가 필요한데 우리는 과학의 역사가 짧다. 기존 연구를 넘어서는 데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새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선구적인 자세를 추구해 온 이대가 노벨상 배출에 잠재력이 큰 이유다.”

 -대학 경쟁력은 교수에게서 나온다. 교수들이 더 피곤해져야 한다.

 “(웃으며) 교수님들 요즘 정말 피곤하다. 연구·강의 다 잘해야 한다. 세계적인 학술지에 연구 성과를 올린 분들에게 인센티브를 더 줄 생각이다. 경쟁무대는 국제다.”

 -정부가 등록금 문제로 사학을 감사하는 등 자율권 훼손 논란이 있다.

 “대학이 책임을 지도록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사립대에 획일적 기준을 적용하니까 자율성이 퇴보한 느낌이 든다. 다양한 대학을 일률적으로 가이드하면 발전이 없다.”

 -대학이 뽑는 경쟁만 하고 가르치는 경쟁을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있다.

 “입시 자율이 거의 없다. 고교의 평가를 각 대학이 그대로 활용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사회적 신뢰가 쌓여야 가능한 일이다. 이대는 지난해부터 강의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교수학습센터에선 강의 개선을 원하는 교수들에게 강의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컨설팅한다. 인문학·글쓰기·리더십·다문화·다언어 교육을 1~2학년 때 완벽하게 시킬 것이다.”

 -등록금 문제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9월에 교비회계 장학적립금을 1350억원 늘려 총 2097억원이 됐다. 기존(747억원)의 세 배, 전체 적립금(6569억원, 2010년)의 3분의 1이다. 국내 최대 규모다. 적립금 운용수익 장학금도 60억원 늘어나 연간 235억원, 2015년에는 410억원이 된다.”

 -학생들이 취업 문제로 고민한다. 졸업 후 서비스도 필요하다.

 “경력을 밀착 관리하는 이화케어넷(Ewha CareNet) 서비스를 제공하겠다. 여성은 졸업 후 사회·직장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는데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해주겠다는 뜻이다. 취업, 법률상담, 경력관리, 대학원 진학 등이다.”

인터뷰=양영유 정책사회 데스크
정리=박수련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이화여대 김선욱 총장=1952년 서울생. 명동 계성여고 학생회장에 이어 이화여대 법학과에 수석 입학한 뒤 3학년 때인 1973년 총학생회장을 맡아 유신 반대 시위를 이끌었다. 88년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행정법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95년부터 이화여대 법대 교수로 재직했다. 2005년 1월~2007년 4월 최초의 여성 법제처장(장관급)을 역임했고, 한국독일동문네트워크 아데코(ADeKo)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9월 제14대 총장에 취임했으며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평. 산행(山行)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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