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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부모는 정자은행일 뿐 … 양부모가 1000% 부모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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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버지 폴 잡스 품에 안긴 아기 스티브 잡스 1956년 두 살배기 스티브 잡스가 양아버지 폴 잡스의 품에 안겨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양아버지와 고졸 학력의 양어머니는 “돈을 모아 아이를 대학에 보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잡스를 입양했다. [민음사 제공]

일곱 살의 스티브 잡스는 울면서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너네 진짜 부모님은 널 원하지 않았던 거야?” 입양됐다는 잡스의 말에 동네 여자아이가 던진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러나 양부모는 잡스를 끌어안고 확신 있게 말했다. “아니야. 우리가 너를 특별히 선택한 거야.” 버림받았거나 혹은 특별히 선택됐거나.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삶은 평생 이 둘을 오갔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아래 사진)가 24일 출간됐다. 타임 편집장을 지낸 월터 아이잭슨이 40번 이상 잡스를 만나 내밀한 이야기를 끌어냈다. 전기에 나타난 잡스의 키워드는 ‘버림받음’ ‘선택’, 그리고 ‘특별함’이었다.

1972년 고교졸업사진

 “엄마, 가지 마세요. 아빠가 집에 오잖아요.” 청년 잡스는 존 레넌의 노래 ‘마더’를 종종 불렀다. 친구들에겐 “친부모를 몰라 고통스럽다”고 털어놨다. 극단적 채식주의에 빠진 것도 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이었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했다. 채식주의는 훗날 섭식 장애로 이어져 그의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된다. 그는 자신을 버린 친부모를 “정자와 난자 은행일 뿐”이라고 냉정하게 말했고 양부모를 “1000% 제 부모님”이라며 일생 존경했다. 운명은 얄궂게 반복됐다. 여자친구 크리스앤 브레넌이 잡스의 아이를 임신했을 때 두 사람은 23세였다. 친부모가 잡스를 가졌을 때 나이다. 잡스는 낙태를 권했고 “입양 보내는 짓만은 절대 하지 마”라고도 했다. 잡스는 말년에 이를 후회했다.

 버림과 선택의 양극단 사이에서 잡스는 ‘특별함’에 집착했다. 애플 초기에 직원들에게 번호를 할당했는데 공동 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1번, 잡스는 2번을 받았다. 그러자 잡스는 “내가 1번”이라고 우기다가 울어버렸다.

디자인에도 까탈스러웠다. 암 치료를 받으며 의료용 마스크를 써야 할 때도 “디자인이 맘에 안 든다”며 다른 디자인을 5개쯤 가져오면 직접 고르겠다고 고집부렸다. 하지만 이 집착이 애플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제품은 최악”이라는 신조였다. 입원해서도 아이폰3GS의 ‘GS’ 글자 디자인을 놓고 병실에서 팀 쿡과 한 시간 동안 논의할 정도였다.

 그는 막무가내식 리더였다. 제품 출시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판매수치를 근거 없이 부풀리기 일쑤였다. 한번은 “볼을 사용하는 마우스를 제작하라”는 그의 지시에 담당 엔지니어가 “상업적으로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는 다음 날 해고당했고 후임 엔지니어의 첫마디는 “저는 그거 만들 수 있어요”였다. 그의 고집으로 그르친 일도 많다. 매킨토시에는 냉각 팬이 없어 발열이 심했는데 이는 잡스의 디자인 우선주의 때문이었다.

아이폰4의 통신불량 ‘안테나게이트’ 역시 원인은 잡스였다. 그의 비밀유지 원칙 때문에 실험 단계를 못 거치고 제품을 내놨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때로 혁신의 원동력이 됐다. 워즈니악은 “스티브의 비전은 비논리적이었지만 결국 그의 주장대로 제품이 완성되곤 했다”고 회상했다.

삼성전자가 아이패드의 시스템온칩(SoC) A4를 제조하게 된 사연도 소개됐다. 잡스는 인텔이 유동성이 떨어지고 경쟁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삼성을 택했다.

 잡스의 일생은 모순적이다. 선불교 신봉자이면서도 거대 기업을 운영했고, 반(反)물질주의 히피였으면서도 친구들의 고안물을 상업적으로 활용했다. 기술과 예술을 넘나들었던 그는 전기에 이렇게 말했다.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만나는 교차로에는 마법이 존재합니다.” 버림받은 생으로 시작했으나 세상을 매료시킨 남자, 그의 삶이 바로 마법이었다.

◆교보문고 4시간 만에 1500부 팔려=24일 출간된 『스티브 잡스』(민음사)를 사기 위해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엔 오전부터 구매자들이 몰렸다. 판매 개시 시각인 정오에 첫 책을 구매한 주인공은 SK플래닛에 근무하는 김천석(32)씨. 김씨는 두 권을 사면서 “애플의 독특한 기업문화에 관심이 많다. 한 권은 개인 소장용이고, 다른 한 권은 직장동료들이 읽도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보문고 측은 “온·오프라인 합쳐서 4시간 만에 1500여 부가 팔렸을 정도로 전기로는 이례적인 열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열기는 이 책이 잡스가 생전 인정한 유일한 전기이기 때문이다. 유명인에 대한 일종의 팬덤(fandom) 성격도 짙다. 소문난 애플 매니어인 제너럴닥터의원 김승범(34) 원장은 “다른 책이 유사품이라면 이번 전기는 ‘애플 정품’ 같은 느낌”이라며 “일단 영문판으로 먼저 보고, 번역판과 아이북스토어(iBookstore)로도 구매할 생각”이라고 했다.

심서현·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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