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한국주식 왜사나' 긍정적 관점의 재조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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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산다는 현상 자체보다 왜 사는가가 중요

주가를 움직이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짧은 기간에 걸친 주가의 움직임은 수급을 떠나서는 설명할 수 없다. 종합주가지수가 5월말부터 6월초 사이에 예상을 뛰어넘는 급반등세를 보인 것도 외국인들이 주식을 적극적으로 사들임으로써 수급 판도를 수요 우위로 이끌어간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5월 31일부터 6월 12일까지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2조2천5백95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의 영향력이 크다고 해서 단순히 외국인이 사면 나도 사고, 팔면 나도 파는 식으로 투자를 하다간 결국, 뒷북만 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이 산 뒤에 주가가 올라 이미 살 만한 이유가 없는 가격대로 들어섰을 수도 있고, 외국인들이 잘못된 정보로 판단을 했다가 지금은 생각을 바꾸고 팔 기회만 노리고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사는지를 따져 보고, 그 이유가 지금 내 처지에서도 매수 이유로 타당한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미국 증시 회복은 부수적 요인

최근 외국인들이 한국 주식을 많이 사는 이유로는 남북 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긴장 완화 및 경제 협력 확대 기대감이 적지 않게 거론되고 있다. 외국인 관점에서 한국의 국가 위험을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 안보 위험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이 하나의 계기가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구체적인 협력 관계를 도출하고 경제적으로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수많은 난관을 거쳐야 할 것이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된 시점은 지난 4월 중순이었는데 외국인들은 이미 연초부터 3월까지 6조원어치를 순매수했었고 정상회담 발표 시점부터 5월 하순까지는 한국 주식 매수에 소극적이었다가 최근에야 매수 우위로 돌아섰다는 점에서, 정상회담 재료로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선호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5월 하순이후 미국 경제의 연착륙 가능성을 시사하는 신호가 늘어나면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미국 주식시장도 회복세를 나타낸 것이 미국계 자금의 해외 주식 투자 수요 회복으로 귀결됐다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나라 주가지수가 30% 이상 오른 최근 보름 동안 다른 나라들의 주가 상승폭은 미미했던 점을 살펴볼 때, 하필 외국인들이 왜 한국 주식만을 집중 매수했느냐를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

실적에 비해 너무 낮은 한국 기업의 주가 수준

그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이유로, 한국 주식이 다른 나라 주식과 비교해 볼 때 내재가치나 기업실적에 비해 터무니 없이 싼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주가가 기업의 본질가치에 비해서 어떤 값으로 거래되고 있는지를 따질 때에는 주가수익비율(PER), 즉 주가를 주당이익으로 나눈 값을 본다. 주가수익비율이 낮다고 하면 같은 이익을 내고서도 상대적으로 싼 값에 거래되고 있는 것이므로 그만큼 주가가 싼 경우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네셔널(MSCI) 지수에 편입된 세계 25개국 기업들의 국가별 평균 주가수익비율을 정기적으로 싣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00년 예상이익을 기준으로 볼 때 지난 4월10일 현재 우리 나라보다 주가수익비율이 낮은 나라는 중국과 아르헨티나 뿐이었다. 또한 우리 나라의 주가수익비율은 8.1배인데 반해, 일본 38.2배, 미국 23.9배, 대만 41.0배 등이었으니 같은 주당 이익을 낼 경우 국내 주식은 다른 나라의 주식보다 절반에도 못미치는 낮은 가격에 거래된 셈이다.

물론 주가수익비율이 낮다고 해서 반드시 주가 상승의 잠재력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주가수익비율이 낮아도 앞으로 기업이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든지, 재무구조가 안좋아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다든지 한 경우에는 비록 주가수익비율이 높더라도 유망한 투자 대상에선 제외돼야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기업이 다른 나라 기업에 비해 성장 잠재력이 떨어진다고 볼 만한 뚜렷한 이유는 없다고 여겨진다.

특히 인터넷, 무선통신 등 정보를 보내고 받는 정보통신 인프라 측면에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보급 속도를 자랑하고 있다는 점은 정보통신산업 자체는 물론이고 그것을 활용하는 제조업 및 서비스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 주식 가치에 대한 긍정적 관점의 재조명 필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변화만으로는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매수 열기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보다는 좀 더 근본적으로 한국 기업이 주가수익비율 측면에서 다른 나라들보다 너무 낮은 수준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정보통신 인프라 측면에서도 높은 성장 잠재력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 외국인 매수에 배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경우라면 주가 상승세가 한 차례 꺾이더라도 이내 과소평가된 주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다시금 상승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마침 정상회담 재료가 희망에서 현실로 바뀌면서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라"는 격언을 입증하듯, 주가가 조정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그 동안 외국인들에게 꾸준히 주식을 팔았던 국내 투자자들로서는 스스로 한국 주식의 수익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위험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면서 조정 이후에 대비한 투자전략을 재정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현대증권 BK조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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