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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CUPY는 살쾡이 파업 … 경제 패러다임 못 바꿀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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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존 스틸 고든(67·사진)은 스티브 프레이저(『월스트리트:미국인 꿈의 궁전』의 지은이)와 케빈 필립스(『나쁜 돈』 지은이)와 함께 3대 월스트리트 역사가로 꼽힌다. 프레이저와 필립스와 달리 고든은 우파다. 월스트리트의 전통을 중시한다. 그의 눈엔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가 어떻게 비칠까.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봤다.

-당신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월스트리트가 공격받고 있다.

 “월스트리트는 1790년대 이후 비판·견제·공격을 이겨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필라델피아와 경쟁해 미국 내 금융 중심지가 됐다. 런던 더시티(The City)와 맞서 끝내 세계 금융센터가 됐다. 1920년엔 무정부주의자의 폭탄 테러 공격을 받기도 했다. 요즘 시위는 그런 역사의 일부다.”

 -시위가 상당히 격렬하더라.

 “군사정권 시절 한국처럼 격렬하지 않다(웃음). 전형적인 미디어 과장이다. 신문과 방송이 현상을 부풀려 보도하니 시위가 퍼지고 있는 듯하다. ”

 -미디어가 없는 사실을 전했을까.

 “시대 상황하고 맞아떨어지는 시위인 것만은 사실이다. 금융위기 직후엔 늘 월스트리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2001년 엔론 사태 이후 반(反)월스트리트 세력이 힘을 얻었다.”

22일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시위 참가자가 유명 금융인들을 ‘억만장자 돼지’로 묘사한 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팻말의 인물들은 자산운용사 스테이트스트리트의 회장인 로널드 로그, JP모건체이스 회장 제이미 다이먼, 전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최고경영자(CEO) 켄 루이스, 전 뱅크오브뉴욕멜런 CEO 로버트 켈리(왼쪽부터)다. [뉴욕 로이터=뉴시스]

 『나쁜 돈』의 저자인 필립스는 “경제가 너무 금융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니(금융화) 빈부의 차이가 커졌다”고 주장하곤 했다. 최근 칼럼에서 그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계기로 금융화가 끝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필립스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리버럴(미국 개혁주의 또는 좌파)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하는 역사가들과 경제 전문가들이 많다.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번 시위는 살쾡이 파업(조직화되지 않은 파업)에 가깝다. 리더도 없고 뚜렷한 요구사항도 없다. 정치적 상상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소셜네트워크 시대 시위여서 그렇다고 한다.

 “내 눈엔 그렇지 않지만 그들의 눈에 월스트리트는 막강한 곳으로 비친다. 그렇다면 조직적으로 공격해야 성공한다. 거리를 몰려다니는 식으로 해선 어림도 없다. 그들은 세금에 반대하는 우파 세력인 티파티 만큼이나 극단적인 존재들이다.”

 -어떤 형태든 변화는 일어날 듯하다.

 “경제 패러다임이 바뀔 순 있다. 미국 역사를 돌이켜보면 거의 20년마다 위기를 경험했다. 그때마다 월스트리트 메커니즘이나 사고방식이 바뀐 것은 아니다. 여러 조건이 갖춰져야 큰 변화가 가능하다.”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월스트리트는 하나의 조직이나 기관이 아니다. 여러 개인이 모인 곳(시장)이다. 이런 곳은 내부 세력이 변화를 부른다. 주식 투자자인 조셉 케네디(존 F 케네디의 아버지)가 대공황 직후 초대 증권거래위원장을 지내면서 변화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조건은 무엇일까.

 “미국인들은 월스트리트를 통해 돈을 많이 벌고 있다. 월스트리트(금융)-메인스트리트(실물)가 하나로 융합돼 있다. 옛날처럼 양쪽이 갈등하지 않는다. 시위대 몇천 아니 몇만 명이 외친다고 그 점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강남규 기자

◆존 스틸 고든=뉴욕 토박이다. 1944년 금융가문에서 태어나 밴더빌트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유명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의 편집장을 지낸 뒤 금융 역사가로 변신했다. 주요 저서는 『월스트리트 제국』 『부의 제국』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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