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엔 팀 리더십 … 후보보다 참모진 보고 뽑아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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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호 12면

리더(Leader)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이나 단체 따위에서 전체를 이끌어 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리더라는 단어에는 이 문장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다.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갖는 의미도 다양하고 무게감도 갖가지다.

『서울대 리더십 강의』 펴낸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최근 서울대 리더십강의라는 책을 펴낸 김광웅(70) 서울대 명예교수에게 리더의 요건을 물었다. 그는 김대중 정부 시절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지냈다. 또 2008년 10월 문을 연 서울대 공공리더십센터의 산파역을 했다.
 
-리더, 그들은 누구인가.
“옛날에는 무리를 끌고 가는 사람, 지배하는 사람을 리더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리더는 ‘함께 가는 리더십’을 요구받는다. 나도 너도 아닌 우리를 위해 세상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더욱이 21세기는 무대 위와 아래, 무대 앞과 뒤를 구분하지 않는다. 즉 리더와 팔로어(follower) 간 차이를 두지 않는다. 그러다가도 위기 때는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이가 리더다.
보통 리더는 비전, 인내, 용기, 추진력 등을 갖추고 결과를 얻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전체를 조감할 수 있는 융합적 시각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적 삶을 살아야 한다. 리더는 특히 감각, 그중에서도 상황맥락지능이 발달해야 한다.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판단을 명확히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리더는 고독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활발한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에 밥을 몇 끼씩 먹고 다니면서 떠드는 게 리더는 아니다. 리더는 때론 고독해야 한다. 책에 ‘5시 룰(rule)’이라고 적었다. 그때면 아무도 만나지 말고 결제도 하지 말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의미다. 훌륭한 리더는 용기 있고 또 초연해야 한다. 실제로도 리더는 고독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 달치 일정을 보고받으면 가급적 청와대 밖으로 더 나가자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만큼 권력자, 지도자는 외롭고 밖이 그리웠던 게다.”

-서울시장 선거에 이어 내년엔 총선, 대선이 기다린다. 어떤 리더에게 표를 던져야 할까.
“앞으로 5, 6년 뒤까지 어떤 일이 예상되느냐부터 가려야 한다. 이 시기에 어떤 리더십이 요구되는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창조적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리더가 될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국민들은 정치인이 무언가 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국민을 행복하게 해준다거나 교육, 취업, 복지 등을 해결하겠다고 하는 리더의 약속은 허언이거나 옳지 못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아야 한다. 동시에 정치 지도자 또는 후보자들이 공약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또 앞으론 후보자 개인만 보지 말고 그 팀을 보고 투표해야 한다. 21세기 리더십은 ‘팀 리더십’이다. 2인자, 3인자 등을 포함한 참모진들의 정체성, 정향성 등이 밝혀져야 하고 자질과 능력이 철저히 검증돼야 한다. 그래야 당선 후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정치 리더그룹은 정당 속에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정당정치가 위기라고 한다.
“세상에는 사익만 있지 공익은 없다고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이 말했다. 그러나 사익만 극대화하다가는 양떼가 많아져 목초지가 초토화되는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할 테니 서로 양보하며 공존의 지혜를 짜야 한다는 게 민주제도요, 민주정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정치인들은 공익이라는 이름을 겉에 내걸고 사익 추구에만 급급했다. 그런 정당을, 그런 정치인을 믿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어느 정당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이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부부싸움을 하고 있더라. 그렇다고 그 집이 늘 부부싸움만 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정당정치도 마찬가지여서 싸움도 하지만 협력할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평행선만 그리니까 국민은 실망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이해를 존중하는 정치가 아쉽다. 그렇다고 정치인 아닌 인물이 등장해 정치직을 맡는다면 그것 역시 소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정치는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내가 강조하는 ‘리더십의 역설’이다.”

-리더가 되면 뭐가 좋길래 안철수·박원순처럼 자기 분야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로 나오려 하나.
“권력욕이라는 게 굉장한 위력을 지닌다. 물론 두 사람 다 권력욕에 불탔다고 하면 아니라고 부인할 거다. 좋게 얘기하면 전문가로서 일하는 것보다는 세상을 뜯어고치기 위해 더 높은 자리에 가서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겠다는 의욕이다. 하지만 이게 쉽지 않다.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전쟁이 나서 나라가 흔들려도 나중에 다시 회복되기 시작하면 옛날로 돌아간다. 섭리가 그렇다.
사실 안철수 교수는 보기 드문 아름다운 리더다. 그러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두 가지 있다. 우선 2m 깊이 풀에서의 수영과 대해(大海)의 수영은 같은 원리인 건 맞지만 차이가 크다. 대해로 가면 상어 떼가 득실거린다. 풍랑이 거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기업 운영과 시정, 국정은 차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서울시장이 되면 개혁을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말을 하던데 시장이라고 마음대로 규정 바꾸고 정책도 세우고 예산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안 교수는 공공부문의 논리와 패러다임을 더 익혀야 할 듯하다. 박원순 변호사는 책에 기술했듯이 도구주의자다. 대기업에 가서 돈 받아내고 좋은 일 했다고 주장한다. 그건 문제다.”

-요즘은 우리 사회는 ‘리더 부재 시대’라고도 말한다.
“우리나라 리더는 미안하지만 리더가 아니다. 제대로 리더십 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정당하고 바른 경험도 없이 등장했다. 권력이 봉사라는 것을 모르고 리더가 됐다. 공부 잘해 지위가 높아지거나 선대의 유산으로 CEO가 되어 세상 어려운 줄 모르고 중책을 맡는다. 자신이 어떤 인물인지, 얼마짜리인지 모르고 자라고 책임을 맡고 있다.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 제1막 ‘런던의 황금’에서처럼 권력은 부패할 대로 부패하는 생리도 모르는 채 권력욕에 불탄다. 또 독재 탄압에 저항해 권력을 잡은 후 응징하면 또 다른 지배의 악순환을 거듭한다는 걸 모른다. 이 나라 지도자들 대부분이 최고의 선을 지향하다 최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를 범하고 있다.”

-거꾸로 보면 우리는 리더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닌가.
“조선시대 철종 때 민란 이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라는 인식이 대대로 이어졌다. 평등의식이 높아질수록 리더와 팔로어의 구분은 없어진다. 더욱이 리더가 팔로어의 기대만큼 못하니까 리더로 인정받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리더를 인정하지 않는 팔로어에게 그 일을 맡아 수행하라고 하면 그 이상을 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국민은 그걸 알았으면 한다.”

-우리 국민은 어떤 사람을 자신의 리더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나.
“인간적인 매력이 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인물을 따르는 것 같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냉철한 비판 없이 지극히 감성적으로 따르거나 거부하는 것 같다. 내 구미에, 내 감성에, 내 이해에만 맞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리더십의 정형이나 이상은 없어진다. 트위터 잘해서 당선된다고 리더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지는 정말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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