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으로 가득 찬 월가 시위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1호 20면

“맨해튼 주코티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마천루 속의 금융 귀족들은 돈으로 장난질 치고, 정치세력과 언론을 자기 편으로 만든다.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재정을 도박과 투기판으로 밀어넣는다.”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대의 지도자인 크리스 헤지스(Chris Hedges)는 ‘월가 점령 저널’ 8일자 1면에 이렇게 썼다. 이어 “JP모건체이스가 뉴욕시 경찰재단에 최근 460만 달러를 기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돈을 숭배하는 이들은 돈으로 권력을 사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고통 받는 이들에게 무관심하고, 탐욕과 특권 위에 둥둥 떠있다”고 말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강력한 반(反)자본주의 장광설이다. JP모건의 기부 행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별도로 하고, 모순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따져보자. 헤지스부터 살펴보자. 그는 탐사보도 사이트 ‘트루스디그(Truthdig)’의 칼럼니스트다. 트루스디그를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주아데 카우프만(Zuade Kaufman)으로부터 온다. 그는 고(故) 도널드 카우프만의 딸이자 갑부인 엘리 브로드의 친척이다. 카우프만과 브로드는 미국의 대표적 주택건설업체인 ‘KB홈’의 설립자다. KB홈의 시장가치는 5억1500만 달러다. KB홈의 자본 없이 헤지스의 트루스디그가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위대는 페이스북·트위터·텀블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널리 퍼뜨린다. 세 회사 모두 벤처캐피털의 지원을 받는다. 특히 페이스북은 골드먼삭스 그룹이 지원한다. 시위대는 애플의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손에 쥐고 다닌다. 하지만 애플에 자금을 대주는 자본이 없었다면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없었을 것이고, 애플은 3910억 달러의 가치를 가진 기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시위대가 지난 한 달간 먹고 자며 생활해온 주코티 공원은 그 이름을 존 주코티(John Zuccotti)에서 따왔다. 존 주코티는 미국 최대 상업건물 개발 회사인 ‘북필드오피스 프로퍼티’의 회장이다. 공원을 소유하고 있는 북필드의 최고경영자(CEO) 리처드 클락은 최근 뉴욕경찰에 공원을 청소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대는 맞섰고, 결국 북필드는 공원 청소를 포기했다.

물론 수많은 문제들이 있다. 표출돼야 마땅하고, 고쳐져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건설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다. “이것은 일부 비도덕적인 엘리트에 대한 전쟁 선언이 아니라,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의 행동을 바꾸는 문제”라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가 지적했듯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