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잉글랜드에서 열린 유럽선수권대회. 독일은 준결승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개최국인 잉글랜드를 누르고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체코. 선취 골을 뺏긴 독일은 혜성처럼 등장한 비어호프의 활약에 힘입어 통일 후 첫 우승인 동시에 유럽선수권대회 사상 처음으로 세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은 1950년 이후 현재까지 유럽선수권 대회와 월드컵에서 모두 6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메이저 대회의 성적만 본다면 20세기 최고의 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 전력이 많이 약해졌다. 주전 선수들의 노령화로 체력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세대교체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독일은 98년 프랑스 월드컵 8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 져서 탈락했다. 설상가상, 터키와의 유로 2000 예선 첫 경기에서 강호 독일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전까지 상대전적 압도적인 우위(15전 중 1패)를 보이던 터키에게 1-0으로 패했다. 99년 2월 미국과 가진 친선 경기에서는 3-0로 완패했다.
독일은 클린스만을 비롯한 노장 선수들의 은퇴이후 차세대 선수 육성에 실패했다. 외국 선수들로 가득 찬 분데스리가는 독일의 유망주들이 설 자리를 없애버렸다. 리벡 감독은 뒤늦게 젊은 선수들을 팀에 합류 시켰지만 아직 기량이 입증되지 않았다.
위기에 빠진 독일에게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유로 2000 예선에서 같은 조에 속한 팀들이 모두 약체라는 점이었다. 불안정한 전력이지만 아직 독일의 저력은 남아있었다. 독일은 예선 3조에서 6승 1무 1패로 1위를 차지하며 결선에 진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본선에 진출한 독일은 유로 2000에서 숙명의 라이벌 잉글랜드와 함께 A조에 편성됐다. 2006년 월드컵 유치경쟁과 함께 2002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갖은 조에 편성된 독일과 잉글랜드로서는 이번 유로 2000에서의 대전이 전초전인 셈이다.
피할 수 없는 상대이지만 독일로서는 그리 좋은 대진은 아니다. 더군다나 상승세를 타고 있는 포르투갈이나 예선 무패 전적을 자랑하는 루마니아도 예선에서 독일이 만났던 팀들과는 격이 다르다.
최근의 성적이나 전력을 두고 보면 분명히 독일은 우승후보는 아니다. 하지만 통산 3회 우승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 또 독일은 다른 어느 국가보다 큰 경기에 강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독일을 대표하는 선수라 할 수 있는 마테우스(39. 뉴저지 메트로 스타스)가 출전한다. 월드컵 5회(1982, 86, 90, 94, 98) 출전 및 유럽선수권 5회(1984, 88, 92, 96, 2000) 출전의 경험은 독일 대표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A매치 145회로 세계 최고의 기록을 가진 그는 출전 자체가 세계 축구사의 새로운 기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마테우스와 함께 독일의 부활을 외치는 선수는 96 유럽선수권 최고의 영웅 비어호프(33. AC 밀란)다. 96 유럽선수권 결승에서 동점골과 역전골을 넣으며 스타로 떠오른 그는 예선에서 7골을 팀 내 최다득점자로 등극했다. 파워 넘치는 슈팅과 헤딩력으로 뛰어난 문전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숄(31)은 날카로운 패스와 뛰어난 프리킥 능력을 지닌 미드필더로 이번 대회에서 독일 대표팀의 공수를 조율할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의 카를로스, 이탈리아의 함께 새계 최고의 왼쪽 윙 백으로 평가 받는 지게(29, 미들스 부르그)는 비어호프와 함께 독일의 공격을 책임진다.
예선 1차전 터키와의 경기에서 어이없는 실수로 골을 내줘 실망을 안겨 준 올리버 칸(32. 바이에른 뮌헨)은 본선에서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유럽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골기퍼로서 판단력과 순발력이 뛰어나다.
독일이 유로 2000에서 우승하기 위에서는 첫번째 고비인 잉글랜드와의 예선 경기가 중요하다. 18일 영국과의 경기 결과에 따라 독일은 상승세를 탈 수도 있고 추락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독일의 객관적인 전력상 8강 진출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대회 최대 이변의 제물이 될 수도 있다.
◇ 유로 2000 출전 독일 대표팀 명단
△ 골키퍼
올리버 칸(바이에른 뮌헨), 옌스 레만(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외르크부트(함부르크 SV)
△ 수비수
마르쿠스 바벨, 토마스 링케(이상 바이에른 뮌헨), 로타어 마테우스(뉴 저지 메트로 스타스), 옌스 노보트니(바이에르 레버쿠젠), 마르코 레머(헤르타 베를린)
△ 미드필더
미카엘 발락(바이에르 레버쿠젠), 세바스티안 다이슬러(헤르타 베를린), 토마스 헤슬러(1860 뮌헨), 디트마어 하만(리버풀), 옌스 예레미스(바이에른 뮌헨), 카르스텐 라멜로브(이상 바이에르 레버쿠젠), 메메트 숄(바이에른 뮌헨), 다리우스 보스(헤르타 베를린), 크리스티안 치게(미들즈브러)
△ 공격수
올리버 비어호프(AC 밀란), 마르코 보데(베르더 브레멘), 카르스텐 얀커(바이레른 뮌헨), 울프 키르스텐, 파울로 링크(이상 바이에르 레버쿠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