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봉 들고 뛴 행정학 교수 5명 … “경찰관 하루, 이렇게 고될 줄은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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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박동균 대구한의대 교수(오른쪽)가 대구 황금동에서 수성경찰서 경찰관과 함께 야간
순찰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

“지난여름을 떠올릴 때면 허리춤부터 만지게 됩니다. 경찰관들과 함께 무거운 장비를 허리에 차고 다녔거든요. 무전기·진압봉·수갑·전기충격총….”

 서울대 행정대학원장인 김병섭(57) 교수는 지난 7월 경찰 복장을 하고 서울 강남경찰서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과 관내 순찰을 돌았다. 당시 허리에 차고 있는 장비의 무게는 모두 7㎏. 김 교수는 “2시간 정도 순찰을 돌고 나면 서 있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밤에는 폭력신고를 받고 출동하거나 술에 취한 행인들을 담당해야 했다. 성매매 단속이나 택시 요금 시비까지 1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했다. 김 교수는 “너무 많은 종류의 업무를 처리하는 만능 로봇이 돼야 하는 게 경찰의 현실”이라며 “시민들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것까지 112로 신고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김 교수를 비롯해 한국행정학회 소속 교수 5명이 지난 6~8월 서울 강남·대구 수성·전남 순천경찰서에서 150시간씩 치안현장을 체험했다. 경찰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선 현장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일선 경찰관들이 겪는 격무를 현장에서 지켜보며 앞으로 연구 과정에서 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을 실감하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대구한의대 경찰행정학과 박동균(43) 교수는 형사 두 명과 팀을 이뤄 8일간 경찰 생활을 했다. 형사들과 함께 출근하고 하루 종일 같이 생활하며 야근 형사의 고단함을 느꼈다. 차 안에서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는 상황도 흔히 벌어졌다. 하루는 오전 1시에 강도·강간 용의자가 친구 집에 찾아온다는 첩보에 따라 형사들과 잠복근무를 했다. 열대야로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차 안에서 숨 죽이며 용의자를 기다렸다. 소변이 너무 급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오전 4시30분 동이 틀 무렵에야 나타난 용의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체포한 다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며 “같이 근무한 형사가 ‘잠복 때는 가능한 한 물이나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는다’고 조언해 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형사들의 고충을 자료로만 접하다가 현장에서 직접 뛰며 많은 것을 느꼈다”며 “업무 과중을 덜기 위한 조직 운영 개선 방법을 제안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순천대 행정학과 오시영(40) 교수는 교통경찰 체험에 집중했다. 순천서 경비교통과에 배치된 그는 교통 업무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란 선입견을 첫날부터 버리게 됐다. 출퇴근시간 순천에서 가장 교통량이 많은 조례사거리로 나갔다. 한여름 진땀을 흘리며 신호기 조작을 했다. 교차로에서 꼬리물기를 시도하는 승용차를 막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음주단속 현장에서는 음주측정을 거부하는 취객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교통순찰대원이 한여름 가죽장화를 신는 이유도 이때 알게 됐다.

 오 교수는 “처음엔 멋을 내려고 가죽장화를 신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오토바이에서 나는 열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그는 “교통 분야는 뺑소니 사고 등 복잡하고 체계적인 조사를 필요로 하는 업무라는 점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체험을 스토리텔링 형식의 보고서에 담아 29일 경찰발전연구회 가을 학술세미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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