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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배교해 산 자, 배교하고도 죽은 자들 얘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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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소설가 김훈은 “한강변 천주교 박해지인 절두산 성지 앞을 지나치다가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뉴시스]

출간 전부터 관심이 집중됐던 소설가 김훈(63)의 새 역사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흑산(黑山)』(학고재)이다. 알려진 대로 신작은 1801년 신유박해를 중심으로 이 땅의 피눈물 나는 천주교 박해사를 다루고 있다. “특별한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김씨의 말마따나 출신성분이 다양한 수많은 인물이 등장해 거대한 아수라장 같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촘촘하게 모자이크 한다.

 소설은 크게 두 개의 이야기 축으로 나뉜다. 정약전·황사영 등 당대 엘리트들의 행로와 마노리·육손이·길갈녀·강사녀 등 민초들의 길이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되자 사실과 관찰의 세계에 빠져 어류도감 『자산어보』를 남긴다. 반면 민초들의 최후는 끔찍하다. 천주교 신자였다가 변절한 하급 무관 박차돌에게 쫓긴다.

김훈이 소설 속 표지에 직접 그린 삽화. 시조새, 바다를 건너는 배와 물고기 형상 등을 결합했다. 수억 년 진화의 시공을 건너 가고 또 간다는 의미에서 김씨는 새의 이름을 ‘가고가리’라고 붙였다. [뉴시스]

 20일 오전 간담회가 열린 서울 삼청동의 한 음식점. 등산복 차림으로 나타난 김씨는 “이번 소설은 수많은 천주교 순교자, 그보다 더 많은 배교자(背敎者), 배교해서 삶을 찾은 사람들과 배교하고도 살아남지 못한 자들의 얘기”라고 했다. 또 “자유, 사랑, 인간의 영원성, 불멸성 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의 얘기”라고 설명했다.

 -소설 속에 묘사된 것처럼 19세기 초 조선사회는 그렇게 끔찍했나.

 “단순히 왕을 갈아치우는 게 아니라 조선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혁명 기도가 있었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민란이 거의 매년 일어났고, 흉년·가뭄이 반복됐다. 자연히 백성들의 삶은 참혹했고 터전은 피폐했다. 소설 뒷편 연대기에도 그런 사실이 나와 있다.”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최근 다윈의 『종의 기원』을 다시 읽었다. 현존하는 생명과 수 억 년 전 멸절된 생명 사이에는 무수한 연쇄가 존재한다, 변화를 거부하는 종족은 도태되고 사멸하지만 수 억년 진화의 과정을 뛰어넘는다, 이런 내용이 인상 깊었다. 진화론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힘에 의해 생명의 자유, 이성, 도덕, 윤리적 목표 등이 실현되는 미래를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안된 것 같다.”

 -왜 잘 되지 않았나.

 “나 아니라 누가 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너무 큰 목표였다.”

 -정약전·약용 형제, 그들의 조카사위였던 황사영 등은 어떤 인물이었나.

 “정약용 집안은 한 마디로 카라마조프 같은 사람들이다. 제 각각이다. 동생들이 천주교에 가담해 줄줄이 잡혀가는데도 맏형 약현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부장적인 풍모를 고수한다. 살아남은 약전·약용은 수 많은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도 천주교 연루 얘기를 한 번도 하지 않는다. 끔찍한 기억이었을 거다.”

 소설에서 천주교는 그야말로 들불처럼 번진다.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려웠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위정자들은 꿈쩍하지 않는다. 각각 왜적과 청나라라는 외부의 적을 상정했던 전작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과 달리 『흑산』의 적은 오직 내부로 향한다. 민초들을 괴롭히는 위정자들이다. 김씨는 “내 소설은 역사에서 소재를 취할 뿐 역사소설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에 견줘 요즘 얘기를 한다는 얘기다.

 -현실정치를 비판하는 식으로 읽힐 소지가 있다.

 “대답하기 어렵다. 이번 소설은 많은 갈등 요소를 안고 있다.”

 -허무주의도 느껴진다. 사람은 목적이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어떤 주의자도 아니다. 주의자들이 갖는 야만성을 혐오한다. 나는 이념 없이도 살 수 있다. 좌절은 어느 시대에나 있다. 우리 시대의 약육강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제시한 해결책이 공정거래인데 공정한 약육강식만 양산할 뿐이다. 강자와 약자가 공정한 거래를 하면 공정한 약육강식이 되지 않겠나.”

신준봉 기자

◆신유박해(辛酉迫害)=1801년 정월, 나이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에 나선 정순대비(貞純大妃)의 명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 받은 사건. 100여 명이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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