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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맛 나는 도시 만들기? 시민 참여가 정답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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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도시컨설팅 전문가인 찰스 랜드리(오른쪽)와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이 광주광역시 아시아문화마루에서 ‘창의적 문화도시 조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오종찬]

많은 도시가 ‘창조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도 ‘행복한 창조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 창조도시 주창자이자 세계적인 도시 컨설턴트인 영국의 찰스 랜드리(Charles Landry·63)가 12~16일 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과 관련, 문화체육관광부가 초청했다.

그는 14일 오후 광주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설 현장 앞 아시아문화마루에서 문화체육관광부의 이병훈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장과 공개 대담 강연회를 열었다. 대담 주제는 ‘창의적 문화도시 조성’.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찰스 랜드리 대표가 이병훈 단장과 함께 광주의 대인시장에서 부침개를 맛보고 있다. 그는 “재래시장은 다양한 생각을 가진 남녀노소가 많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병훈 단장: 광주는 전통문화도시, 예술의 도시다. 더불어 민주도시, 인권의 도시, 행복한 창조도시, 빛의 도시, 문화수도 등 여러 가지를 표방한다. 도시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

 찰스 랜드리 대표 : 모든 도시가 복잡성을 가지고, 나름의 스토리들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세계가 단순한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프로젝트와 플랜을 통해 창의적인 상상력을 이용해 전 세계가 그 이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창의적인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도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다. 광주는 창의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1985년 메리나 메르쿨리 그리스 총리가 ‘문화도시’를 처음 이야기하고, 창조도시라는 개념은 2000년대 들어 당신과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주장했다. 문화도시와 창조도시의 근본적 차이는.

 랜드리 : 창조성은, 바로 창의성은 문화도시의 하나의 자원이 된다. 창조는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문화유산, 또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중요해진 여러 가치나 특징들, 문화적인 특징 등을 다 포함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여러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창의성은 엔진이고, 문화는 이 창의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다. 도시 개발에서는 모든 문화의 흐름을 잘 이해하고 이 흐름이 미래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개인도 서로 합친 것보다 더한 창의성을 가지진 못한다. 사람들이 합쳤을 때 창의성이 커지고 좋아진다.

 이 : 하버드대학의 에드워드 글레이저 교수는 『도시의 승리』라는 책에서 "쇠퇴한 도시는 주택 등 인프라에 투자를 많이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 투자를 하라. 정주 여건을 잘 갖춰 지식인들이 도시로 유입되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랜드리 대표가 무각사의 대웅전 앞에서 청학 스님, 이병훈 단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는 “절은 경건한 가운데서 기운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랜드리 : 글레이저 교수의 의견에 동감한다. 산업화된 도시들은 도시를 엔지니어 프로젝트, 하드웨어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도시는 소프트웨어의 결합이다. 사람과 물리적인 것을 잘 결합시켜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연대하고, 더 나은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해야 한다. 도시에서 돈이나 하드웨어를 생각하는 사람은 상위 부류다. 반면 문화라든가, 왜 어떤 장소가 특별한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하위 부류들이다. 예술과 도시를 결합시킬 때 많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 광주 프로젝트(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도 쉬운 게 아니다. 예술의 경우 그 논리가 도로를 내는 논리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은 도시 개발과 발전에 유용할 수 있다.

 이 :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도시계획을 하면서 통합적 고찰을 제대로 안 했다. 인문학적 고찰과 문화예술적 접근을 소홀히 했다. 도시를 개발할 때 수많은 전문가와 시민들이 모여 시민들에게 불편한 것을 해소하는 그런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랜드리 : 도시의 창조성이라는 것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의 역량이 모여져 창의적인 상상력을 동원해 어떤 문제에 대해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예전에는 도시 엔지니어링이나 도시 관리가 단계적이었고, 선형적이었다. 그러나 창조도시에서는 개방적이고 유연한 사람들의 조합이 필요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제 개방적이고 언제 폐쇄적이어야 하는지 잘 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상황의 전개에 따라 방향을 잘 설정한다. 창조성은 무엇을 하느냐, 무엇이 중요한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넓은 의미의 문화는 우리가 사는 삶의 방식인데, 이게 실제로 해결책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예술은 문화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예술이 전통적인 의사결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다. 대화라는 것을 한 차원 높여 주는 게 바로 예술이다.

 이 :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을 2004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목표가 광주만이 아니라 참여 국가들과 동반 성장을 하자는 것이고, 물리적 도시 개발이 아니라 문화적 파워와 소프트 파워 등 연성적 전략을 통해 도시를 키워내자는 것이다.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말 어려운 게 시민과의 소통이다.

 랜드리 : 여러분들은 지금 광주라는 도시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광주의 이야기는 바로 광주라는 인체의 심장·두뇌·배 등 장기(臟器)에서 나와야 한다. 시민들이 흥미로운 이야기에 참여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메커니즘을 만들어, 시민들이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Museum)은 개관하기 전부터 프로그램 개발에 시민들을 끌어들였다. 건물 개관 때 벌써 시민들이 그 건물의 일부가 돼 있었다. 시민들과 공동으로 만든 것이다. 닫혀진 문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광주시민들은 그 이야기에 귀를 닫을 것이다. 문이 열려 있다면 문을 열고 들어와 참여를 할 것이다. 예술이나 문화 관련 프로젝트에서는 공동참여, 공동창의, 공동제작이 중요하다.

랜드리 대표가 광주시 남구 양림동의 한 한옥에서 장독대를 둘러보고 있다. 그는 항아리 안까지 들여다보는 관심을 보였고 “고추장으로 비빈 비빔밥을 먹어 봤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오종찬]

 이: 우리가 짓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은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복합문화공간이다. 도서관·미술관·박물관은 물론 창작공간, 세계 각국 사람들의 교류의 장, 어린이의 문화예술을 키워내는 공간 기능 등을 할 것이다.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어 많은 사람이 광주를 방문하게 만드는 게 우리 목표다.

 랜드리: 전당이 성공을 거두려면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계속해 광주에 인재를 끌어들여야 한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오게 해야 한다. 소문이 나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유입할 것이다. 지식인들을 광주로 이끌어서 광주에 살고 싶게 하는 것, 또 광주에 있는 사람들이 서울로 가지 않고 광주에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래의 한 연구에서 사람들의 70%가 먼저 도시를 선택하고 그 안에 있는 일자리나 회사를 선택한다고 대답했다. 도시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세 가지가 있다. 삶의 편의성 및 교육여건, 자기 꿈 실현 가능성, 그리고 독특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광주는 지금 굉장히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

정리=이해석 기자

◆찰스 랜드리=리처드 플로리다(Rechard Florida)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와 더불어 ‘창조도시’를 주창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공부했다. 1978년 영국에 도시컨설팅 업체인 코메디아(Comedia)를 설립했고,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도시의 미래를 위한 문화의 창의적 활용을 강조한다. 세계 200개 이상 도시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저서는 『창조도시』 『급류를 헤쳐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복잡성시대의 도시생활』 『도시 만들기:예술적인 관점에서』 등이 있다.

“재래시장선 사람 사는 맛, 사찰선 고요함 속 기운 느껴 … 술 마실 때 원샷 독특”
랜드리가 느낀 한국 문화

찰스 랜드리 코메디아 대표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고, 광주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이번 방문 기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자문위원으로 위촉받았다. 16일 출국하기 전에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간부들과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서 대해 간담회를 가졌다. 광주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대담 강연회을 하고, 아시아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사업 교육생 50여 명을 대상을 특강을 했다. 또 재래시장인 대인시장을 구경하고,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관람했다.

 그는 외국 출장이나 여행 때 가급적 현지의 문화에 따른다. 광주에서도 무각사라는 사찰에서 잠을 잤다. 새벽에 혼자 법당에 가 기도하기도 했다. 사찰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는 동안에는 요리 재료와 방법들을 묻곤 했다. 양림동에 있는 한 전통가옥에 들렀을 때는 장독대의 항아리 뚜껑을 열어 보기까지 했다. 지역 예술인 등과 식사할 때는 상추에 젓갈까지 얹어 쌈을 싸 먹고,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도 사양하지 않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술잔을 한꺼번에 비우는 ‘원샷’이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다.

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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