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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색이 학문 연구한다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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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세희
인제대 교수·행정학

최근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과 학술지의 부실한 관리실태가 국정감사에서 도마에 올랐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3조원이 넘는 연구비를 집행하는 한국연구재단은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과제 중단 등으로 455억원을 날린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술연구의 관리를 위한 학술지는 13년 사이에 56종에서 2060종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심사 부실 및 같은 학교 교수 논문 실어 주기 등으로 질 관리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 최근 7종의 학술지에 대한 등재(후보)가 취소되고 40여 종이 경고를 받았다.

 특히 이러한 문제들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런데도 아직 연구비·학술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한국연구재단만의 책임은 아니다. 학계와 연구자의 책임도 크다. 그동안 연구비는 지원에만 치중하고 학술지는 양적인 성장에 집중했다. 그러니 관리·감독이 엄격히 이뤄지지 않았다. 학계와 연구자의 연구윤리 의식도 없어 곪은 상처가 외부로부터 터지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대학교수의 업적 평가를 비롯한 각종 대학평가가 논문의 질보다 양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학술지가 여러 문제를 잉태하게 한 주요 원인이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국민 세금을 재원으로 해 이뤄지는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 지원과 학술지 관리가 더욱 엄격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다.

 흔히 21세기는 지식기반 정보화사회라고 한다. 지식의 창출과 활용이 그 국가·사회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창출과 활용을 위한 연구개발비의 지원뿐만 아니라 학술연구 결과와 정보를 교류하고 지식축적의 수단이 되는 학술지에 대한 엄격한 질 관리 역시 학문발전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연구비·학술지 지원에 대한 각종 부조리나 부작용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 규모 및 기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동안 연구비와 관련해 적잖은 논란과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그로 인해 집행·관리의 투명성이 높아지는 등 점차 개선되고 있다. 반면 학술지의 질 관리 논란은 최근에 불거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개선 여지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의 학술지 평가에 대한 기준은 신규평가와 계속평가의 방법으로 구분돼 있으며, 평가방법·평가항목·평가요소 등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평가가 대규모 학회에 맞춰진 점, 현재의 기준으로는 질적인 평가 대신 양적인 측면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학문의 양적 성장을 가져오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학문 발전과 학술지 질 관리를 위해 학술지 평가를 내실화하는 동시에 평가방법 및 항목, 평가 요소 등을 개선해 건실한 학술지 등재(후보)로의 진입과 부실한 학술지의 퇴출을 강력히 추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러한 연구비 지원과 학술지 질 관리에 대한 정부와 한국연구재단의 노력의 결실이 나타나고 국민적 공감대와 눈 높이를 맞출 때 연구비 지원 확대와 학문 발전을 위한 다양한 우수 학술지가 육성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제기된 문제점을 개선하고 더욱 철저히 관리해 이제는 질 관리를 기반으로 한 양적인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학문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오세희 인제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