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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대책, 낙태 실상부터 파악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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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명진
가천의대 생명과학과 교수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우리나라의 낙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의 낙태가 2008년 1000명당 21.9건에서 2010년 15.8명으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는 저출산으로 고민하는 우리나라의 미래 계획과 보건복지 정책을 세우는 데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낙태가 줄었다는 조사 결과가 반갑기는 하지만 과연 실제로 낙태가 그만큼 감소했을지에 대해선 선뜻 확신이 서질 않는다. 조사의 신뢰성에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2005년 고려대 조사에서 1000명당 29.8명이던 낙태율이 3년 사이 약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데 이어 2년 만에 다시 30% 가까이 낮아졌다는 조사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과연 최근 5년 사이에 낙태율이 절반으로 줄어들 만한 획기적인 변화가 있었는가.

 낙태 실태조사는 4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로 이루어졌다. 우선 드는 의문은 온라인 응답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다. 대면조사에서도 낙태를 경험한 여성이 대놓고 낙태를 했다고 밝히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런데 컴퓨터 화면에선 솔직하게 답했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과거 선거 결과가 출구조사와 사뭇 다르게 나온 경우가 자주 있었다. 대면조사인 출구조사에서도 이처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데 온라인 조사는 오차가 더 크면 컸지 작지는 않을 것이다. 이처럼 오차가 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나라의 정책이 결정된다면 그 정책 역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조사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낙태를 한 본인들은 그 사실을 밝히지 않으려 한다.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 역시 진상이 공개되길 꺼린다. 왜냐하면 적지 않은 낙태 시술이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낙태의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법에서 허용하는 낙태 사유는 유전학적 이상이나 모체건강의 의학적 사유, 강간과 이에 준하는 준간강, 근친상간 등이다.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산부인과 의사들의 합법적인 낙태 시술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적 요인이나 모체건강의 의학적 문제가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니라면 근친상간이나 강간이 늘었다는 얘기인데,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스스로 어린 생명을 없애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불법적인 낙태만 막아도 많은 생명을 살리고 저출산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낙태의 실상부터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낙태 실태조사를 시급히 개선해야 할 이유다.

남명진 가천의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