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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난에 난굴...중국에 개발권 마구 넘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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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대중 의존도가 급속하게 심화되고 있다. 북한이 마지막 ‘달러 박스’인 광물을 파내 중국에 팔고, 원유와 소비재·식량을 사들이는 후진적 교역 구조가 북·중 교역의 틀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KOTRA에 따르면 2007년 북한의 대외 교역량에서 42.7%(19억 7400만 달러)를 차지하던 북·중 무역은 지난해 56.9%(34억 6500만 달러)로 껑충 뛰었다. 반면 남북 교역은 2007년 38.9%(17억 9800만 달러)에서 지난해 31.4%(19억 1200만 달러)로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에서 67.7%를 차지한 게 무연탄·철강·슬래그(금속 찌꺼기)·아연 등 광물 자원이다. 이들 네 품목의 수출액도 전년 대비 적게는 51%에서 많게는 136%에 이르기까지 급증했다. 반면 중국으로부터의 주요 수입품은 원유, 기계, 전기 제품(TV·VTR), 플라스틱 제품, 곡물 등이었다. 주력 수출 상품이 없는 북한이 광물 자원을 팔아 넘기고, 대신 북한 사회를 돌리는 데 필수적인 에너지·식량·소비재 등을 사들이는 방식이라 북한판 ‘광물 퍼주기’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국제 광물 가격이 급등하며 중국이 북한에 눈을 돌리고, 북한도 경제난 속 3대 세습을 성사시켜야 하니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광물 내다팔기로 나섰다”며 “이런 구조가 계속되면 북한은 중국의 한 성이나 다름없이 경제적으로 예속돼 중국의 광물 공급처이자 소비재 시장으로 전락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광물 내다팔기는 광산 난개발부터 통일 비용 급증까지 크고 작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경수 북한자원연구소장은 “광산은 광물의 품위까지 염두에 두고 10년, 20년을 계획해 파들어가야 하는데 당장 외화가 없다고 쉬운 곳부터 파면 이른바 난굴(亂窟)이 돼 수년만 지나면 광산을 버려 버린다”며 “지금 북한의 광물 퍼주기가 난굴로 이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 광물을 사들이는 단계를 넘어 직접 북한 광산 개발에 뛰어든 것도 문제다. 한반도 최대의 구리 광산은 북한 양강도의 혜산 광산이다. 북·중 국경에 인접한 이곳엔 중국 완샹그룹과 북한의 혜산청년광산이 공동으로 ‘혜중광업합영회사’를 설립해 지난달 광산 준공식을 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 통일부에 따르면 중국은 2004년 이후 함북 무산 철광, 평남 용흥 몰리브덴 광산, 평북 선천 금광, 평북 은파 아연 광산, 평북 용문 탄광 등 20곳을 대상으로 북한과 광산 공동 개발을 합의하거나 개발 계약을 맺었다. 조 연구위원은 “북한 광물은 남한 기업이 북한 투자에 나설 경제적 동인이자 향후 막대한 통일 비용을 줄이는 데 쓰일 한민족 공동의 자원”이라며 “그런데 북한이 곶감 빼먹듯 채굴권을 중국에 넘겨 버리면 나중에 통일이 될 때 껍데기만 남은 북한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통일부는 중국의 광산 진출이 대부분 MOU 정도만을 체결한 수준이고, 본격적인 채광으로 이어진 경우는 적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계약서에 도장만 찍어놔도 나중에 남한 기업엔 걸림돌이 된다. 세계적 철광인 함북 무산 광산이 그렇다. 최 소장은 “당초 북·중 양측은 중국 통화강철집단에 50년의 무산 철광 채굴권을 주기로 합의했지만 북한이 중국의 투자 지연을 이유로 2007년 일방적으로 계약을 취소했다”며 “그러나 향후 우리가 이 광산에 진출할 때 중국 측에서 당시 계약을 근거로 문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심각해 보이지 않는 북한의 광물 퍼주기가 나중엔 남한의 북한 진출과 남북 간 경제 공동체 구축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우려다.

채병건(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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