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동물원' 김창기 솔로로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그들의 노래는 소박하지만 정겨웠다. 일상의 소소함이 묻어난 아주 작은 이야기들이 그들의 노랫말이 됐고, 찡하게 가슴에 와닿던 그들의 노래는 그만큼 아름다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1980년대 젊은이들과 호흡을 같이 했던 동물원. 동물원에서 많은 곡을 만들고 보컬을 맡았던 김창기가 최근 첫 독집 음반을 냈다.

제목은 '하강의 미학' . 과거 동물원이 갖고 있던 소박함의 미학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오히려 깊이를 더한 느낌이다.

가까이에 있어 그 소중함을 잊을 수도 있는 형.부모님.동생.친구, 그리고 어린 아들이 그가 지은 노랫말의 주인공이다.

80년대에 청년이었던 김창기는 어느새 이번 음반의 자켓을 장식하고 있는 귀여운 꼬마의 아빠가 될만큼 세월이 흘렀지만, 삶의 빈 틈새와 여유를 아끼는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음반의 타이틀과 같은 곡인 '하강의 미학' 은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 골목에서 썰매를 타던 기억을 더듬는다.

"차가운 바람이 하나도 차갑지 않아/또 다시 먼길을 올라갈 걱정도 없이/그래, 그렇게 신나게 내려갈 생각만 해야해/…/끝없이 오르고 싶은 욕망에 힘들던 날들/비워도 늘 복잡한 마음/…" 이라는 노랫말을 들어보면 요즘 그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맑은 기타소리와 잔잔한 오르간 소리만 곁들인 반주에 힘들이지 않은 목소리로 잔잔하게 부르는 아름다운 곡이다.

신발을 거꾸로 신는 어린 아들에게 들려주는 얘기같은 '아이야 일어나' 는 따뜻하고 발랄하다.

역시 어떤 일상의 얘기라도 애틋한 감성을 지닌 노래로 만들어버리는 그 특유의 솜씨가 돋보이는 곡이다.

"아이야 어서 일어나, 벌써 아침이 왔단다/곤히 잠든 엄만 더 쉬게 하고 나와 함께 걷지 않으련/아이야 신발을 신어봐, 또 거꾸로 신었구나/…/하지만 그건 괜찮아, 그런 실수는 괜찮아/…" 라고 노래하는 이곡은 동요처럼 단순하지만 부드러운 코러스가 친근함을 더하는 곡이다.

어릴 적 어머니, 형과 함께 피아노를 치며 놀았던 시간을 그리는 '형과 나' , 과거 동물원의 멤버이기도 했던 고 김광석을 그리며 만든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 등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음반을 꽉 채우고 있다.

친구에게 속삭이는 듯한 순수한 보컬에 부드러운 코러스를 더한 것 외에는 별 꾸밈도 없다.

그가 전곡을 작사.작곡했지만 조동익과 박용준이 편곡을 맡아 곡들을 깔끔하게 다듬은 것도 특징. 여섯째곡인 '이 순간처럼' 은 김창기가 곡을 만들었지만 후배가수들인 하오몽상(박상욱.서정훈)이 불러 색다른 맛을 자아낸다.

그는 "이번 앨범은 '동물원' 에서 벗어나 혼자서 편안하게 나의 개인적인 얘기들을 펼쳐놓은 것" 이라며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 자칫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노래가 '일' 이 아닌 진정한 '놀이' 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았다" 고 말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현재 서울 서초동에서 개업한 정신과 전문의다. 병원에서, 또는 CBS FM 청소년 상담프로 'N클리닉' 에서 사람들의 갈등과 고민의 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놀이' 로서 음악을 중시하는 그는 이번 음반을 내고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가족.친구.환자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싶다" 고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TV 출연이나 콘서트도 열지 않을 예정이란다.

그래서 88~98년까지 10년간 그와 함께 해온 동물원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철저하게 일상 속으로, '놀이' 가 되는 음악 속으로 숨겠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