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정성의 손길 덕에 옷도 마음도 깨끗해졌어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아산시노인종합복지관(관장 최영선)에서 운영하는 이동빨래방 사업이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사업은 손수 세탁이 어려운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올 3월부터 실시하고 있다. 세탁뿐 아니라 지역사회 자원봉사단체(온궁로터리클럽, 삼성전자 탕정자원봉사센터, 온양자원봉사센터, 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협약을 체결해 청소와 안마 등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동빨래방 담당 손영호 사회복지사는 “세탁기가 없거나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12일 이동빨래방 서비스에 참가한 손영호(사진 가운데)사회복지사와 조영인(사진 왼쪽)·신보경 자원봉사자가 빨래를 널고 있다. [조영회 기자]

너희들이 있어 살맛 난다”

12일 오전 10시 아산 신창면 황정리. 한적한 농촌마을에 있는 김영자(78·가명)할머니 댁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할머니 빨랫거리 있어요?”

 1.2t 트럭(이동 빨래차)을 타고 온 손영호 복지사와 앳돼 보이는 두 명의 자원봉사자가 김 할머니에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저번에 깨끗하게 세탁해 주고 가서 오늘은 별로 없네. 힘들게 뭘 자꾸 찾아와.”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두꺼운 이불 내오셔요. 깨끗이 세탁해서 덮고 주무셔야죠.”

 봉사자들의 정성이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듯 김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못이긴 척 이불과 옷가지들을 바구니에 담아왔다.

 “할머니 팔 언제 다치셨어요. 많이 아프셨겠네요.”

 “이거 별거 아니여. 넘어져서 뼈에 살짝 금이 간 거 뿐이여.”

 깁스를 본 자원봉사자 조영인(20·여)씨가 걱정스럽게 말을 건네자 김 할머니는 괜찮다며 ‘허허’ 웃는다.

 트럭 안에 있는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봉사자들은 마당을 청소했다. “팔 말고 불편한 곳은 없으세요” 라며 할머니의 어깨를 주무르기도 하고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하며 말벗이 돼주기도 했다.

 1시간 가량 이어진 세탁과 청소가 끝나자 봉사자들은 “또 올께요. 건강하게 몸 관리 잘하세요.”라고 인사하며 길을 나섰다.

 김 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하고 자식들도 도시에 나가있어 홀로 외로움을 느낄 때가 많았다”며 “거동이 불편한 탓에 빨래도 못했었는데 세탁도 해주고 말동무도 돼줘서 기쁘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주 같은 녀석들이 자주 찾아와 기쁨을 주니 살맛이 난다”며 흐뭇해했다.

1.2t 규모의 아산이동빨래방 트럭.

작은 봉사로 느끼는 큰 행복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에 재학중인 신보경(20·여)씨. 그가 사회복지사의 꿈을 갖게 된 건 2009년부터다. 고등학교 시절 꽃동네에 견학을 갔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한 수녀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작은 봉사라도 나눌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해지는지 느껴보라’고 하셨어요.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말씀을 전하는 수녀님의 얼굴은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그 후 신씨는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작은 봉사동아리를 결성했다. 소외된 이웃과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찾아 청소를 해주고 말벗도 해드렸다. 겨울에는 ‘사랑의 연탄배달’등의 행사에도 참가했다.

 “봉사를 하다 보니 수녀님의 말뜻을 알게 됐어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이 더 크다는 걸 말이죠. 작은 봉사지만 행복해하는 이웃을 보며 저도 행복을 느꼈거든요.”

 신씨는 대학생이 된 현재까지도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동빨래방 봉사도 그 중 하나다.

학교에서 이동빨래방 사업에 참가할 봉사자를 모집하길래 바로 신청했어요. 지난달에는 홀로 사는 할아버지 댁을 방문했는데 손녀딸 같다며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도 행복했어요.”

 신씨와 함께 이동빨래방 자원봉사자로 활동중인 조영인씨. 그 역시 신씨와 같은 학교에 다니며 복지사의 꿈을 이어가고 있다. 조씨는 “세탁기가 돌아갈 동안 어르신과 말동무가 돼주는 게 너무 기쁘다”며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외로움’이라고 들었다. 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드릴 수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정다운 이웃 ‘이동빨래방’

아산 읍내동에 거주중인 이원복(82·가명) 할아버지는 요즘 이동 빨래방 트럭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의 아내 김원자(79·가명)할머니가 얼마 전부터 허리가 불편해 집안일이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내가 허리가 아파 집안일을 못하고 있고 나도 다리가 불편한데 이렇게 찾아와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니 얼마나 기쁜지 몰라.”

 이들 노부부는 현재 매주 1회씩 세탁서비스를 제공 받고 있다. 이동 빨래방 손영호 사회복지사는 “아직 홍보가 덜된 탓에 신청자들이 많진 않다”며 “세탁기가 없거나 낡아서 고민하는 어르신들에게는 중고세탁기도 무료로 설치해 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정에 쓰지 않는 세탁기가 있으면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기부하는 것도 이번 봉사에 참여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꽃동네=한국 충북 음성과 경기도 가평에 조성돼 있는 사설 사회복지시설. 현재 두 곳에는 지체부자유자 등 의지할 데 없는 불우이웃 4000명이 생활하고 있다. 또 강화도에도 새 꽃동네를 설립 중이며 미국과 필리핀 등 해외에도 2곳이 운영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